북미공동성명 이후의 세계질서

북미공동성명 이후의 세계질서

                                           이채언(전남대 명예교수, 경제학)                
               

1. 비핵화약속의 의미                             

  북미공동성명에서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는 제3항에 다 들어있다. 제3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2018년 4월 27일에 채택된 판문점선언을 재확인하면서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하여 노력할 것을 확약하였다.”로 되어 있다. 여기서 키워드는 판문점선언이 아니라 판문점선언을 재확인하는 것이고 완전한 비핵화가 아니라 완전한 비핵화를 향하여 노력한다.“라는 것이다. 한미양국 언론은 CVID가 누락되었다고 지적하지만 미국정부는 CVID는 누락된 게 아니라 ‘완전한 비핵화’ 속에 다 포함되어 있다고 변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은 북한이 북미공동성명에서 약속한 것과 미국이 1970년 NPT(핵확산금지조약)에서 약속한 것이 똑 같다는 것이다. 이런 약속은 북한이든 미국이든 국제적으로 핵보유국이라는 인정을 받으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이다. 같은 약속으로 보이는 NPT의 제4조 제2항은 아래와 같다.

  “제4조: (2) 핵무장의 해체와 경쟁적인 핵개발의 조기 중단을 위한 효과적 조치에 관한 국제협상과, 전반적이고도 완전한 (general and complete) 무장해제를 엄밀하고도 효과적인 국제적 관리통제 하에서 이루기 위한 조약에 관한 국제협상을, 본 조약당사국은 각자 선의를 갖고 모색하기로 약속한다.” Each of the Parties to the Treaty undertakes to pursue negotiations in good faith on effective measures relating to cessation of the nuclear arms race at an early date and to nuclear disarmament, and on a treaty on general and complete disarmament under strict and effective international control.

  미국도 1970년 NPT를 맺으면서 국제사회 앞에서 핵무장해제를 위한 협상을 모색하기로 약속했는데 어떻게 북한이라고 안 할 수 있겠는가? 미국은 NPT에서 한 약속을 잊고 있겠지만 북한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은 스스로 찾아서 해나가고 있다. 1970년의 핵무장해제약속은 조약당사국이 각자 알아서 협상을 준비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싫으면 안 해도 괜찮은 약속이었다. 따라서 미국이 잊어먹었다고 해서 조약을 위반한 것도 아니다. 미국은 ‘핵개발의 중단과 핵무장의 해제를 위한 협상을 조속히 모색하기로’ 약속했지만 북한은 이미 판문점회담과 싱가포르회담, 조중회담 등으로 핵무장해제를 위한 협상을 이미 시작했다. 핵보유국으로서 갖추어야 할 사명과 책임을 솔선수범하고 있다.

  원래 법률적 문서에서 ‘A를 재확인한다.’고 했으면 나중에 가서 ‘난 A와 상관없다. 모르는 일이다.’라고 발뺌할 수 없다. 공동성명에 서명한 북한과 미국이 판문점선언을 재확인했으면, 두 나라는 나중에라도 판문점선언의 내용에 대해 모른 척하면 안 된다. 판문점선언의 당사국도 아닌 미국이지만 판문점선언의 내용 가운데 꼭 알아둘 것이 3가지 있다. (1) 남과 북은 앞으로 상대방에 대해 그 어떤 형태의 무력도 사용하지 않기로 하였다(그러니까 미국은 앞으로 허튼 생각을 말아야 한다). (2) 남과 북은 금년 중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3) 남과 북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적극 노력해나가기로 하였다.

  이 중 특히 간과하는 부분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이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남북 양쪽의 비핵화이다. 그런데 남쪽은 주한미군의 존재로 남한 내의 핵무기와 핵시설의 제거만으로는 남한의 비핵화가 될 수 없다. 한반도에 미지상군이 존재하는 한 미국의 핵전략자산이 언제라도 한반도 근처에 접근할 수 있다. 따라서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특히 미국)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남북이 공동으로 노력한다는 것은 주한미지상군의 철수에 대해 미국의 지지와 협력을 얻기 위해 남북이 공동으로(남한만이 아니다) 노력한다는 의미이고 이 사실을 미국이 최소한 알고는 있어야 한다. 

2. 비핵화는 ‘핵 없던 나라’로 환원하는 것이 아니다.

  공동성명 제3항에 명시된 비핵화노력의 주체는 미국이 아니라 북한이다. 미국은 한반도비핵화과정을 지지해주기로만 했다. 비핵화노력에 대한 노벨평화상이 주어진다면 김정은-트럼프의 공동수상이 아니라 김정은 단독수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비핵화를 지지하는 나라는 미국이 아니어도 많이 있다. 유일하게 이스라엘만 공개적으로 이번에 북미공동성명에 새겨놓은 한반도비핵화약속에 대한 지지를 거부했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도 판문점선언을 지금까지와는 달리 김정은과 함께 손잡고 주체적으로 실천한다면 김정은-문재인 공동수상도 가능하다. 그만큼 전략국가와 전략국가가 아닌 나라의 차이는 엄청나다. 세계비핵화를 전략적으로 주도하는 북한이라는 나라가 세계질서에 대해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지 살펴보자.

  아래 표는 비핵화된 나라와 원래부터 핵이 없던 나라의 차이를 보여주기 위해서 만든 것이다. 핵보유국은 핵으로 타국을 위협할 수도 있고 타국의 핵위협에 핵으로 맞설 수도 있지만, 비핵화국은 핵으로 타국을 위협할 수도 없고 타국의 핵위협에 핵으로 맞설 수도 없다. 그러나 몰래 감추어둔 핵이 있을 수도 있고 다시 핵무장을 할 능력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핵으로 보복할 능력도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비핵화국은 핵으로 다른 나라를 선제적인 공격은 못하지만 다른 나라의 핵공격을 핵으로 대응할 가능성까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핵을 보유하지 못한 나라는 타국의 핵위협에 대해서는 다른 핵보유국의 핵우산 아래에 들어가야 한다. 그 대가로 핵우산을 제공해준 나라에 종속되고 그들의 패권적 지배를 받아주어야 한다. 이에 비해 비핵화국은 핵우산을 필요로 하지도 않고 타국에 대해 핵우산을 제공하지도 않는다.

   이차이는 세계질서의 새 변화를 의미한다. 비핵화국은 핵을 몰래 보유할 수는 있어도 핵이 있다고 남을 위협하거나 남에게 핵우산을 제공하지도 않기 때문에 패권주의 자체가 불가능하다. 비핵화국은 핵은 없어도 핵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타국의 핵공격 시에는 언제 (숨긴)핵으로 보복할지 모른다는 암묵적 핵방어 능력이 있다. 따라서 비핵화국에 대해서는 핵보유국이 함부로 공격하지 못한다. 그러나 세계비핵화가 이루어지면 더 이상 다른 나라에 대해 핵으로 위협할 나라가 없어지기 때문에 (숨긴)핵으로 핵방어를 하느냐 않느냐는 무의미한 질문이 된다. 앞으로 이 세계는 핵우산 같은 패권놀음도 없어지고 패권국가의 갑질도 사라질 것이다. 북한이 한 비핵화약속은 북한은 이웃나라나 지역에 대해 패권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지, 핵이 없던 옛날의 북한으로 되돌아가겠다는 약속이 아니다. 미국을 제외한 다른 핵보유국들,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도 사실은 공표를 안 했다뿐이지 사실은 이미 비핵화과정에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다른 나라에 대해 핵으로 위협하지도 않고 다른 나라에 대해 핵우산을 제공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미국을 제외하곤 다른 어느 나라도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

3. 북미정상회담의 성격

북미공동성명에 명시된 쌍방의 의무사항은 비대칭적이다. 북한은 국제사회로부터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기 위해 필요한 의무조항인 ‘비핵화를 향한 노력’이라고 애매하게 표현된 노력만 하기로 했다. 그에 비해 미국은 새로운 북미관계의 수립, 한반도의 공고한 항구적 평화체제의 구축을 위한 북한과의 공동노력, 판문점선언의 이행을 지지 등,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의 전면적인 대변환을 약속하고 있다. 트럼프대통령이 구두로 확인해준 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어느 정도 비가역적 지점에 이를 때까지는 유엔의 대북경제제재를 해제할 수 없다는 언급만 겨우 북미 사이의 비대칭관계를 가려주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의 이런 언급은 매우 모순적 발언이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향해 노력하려면 미국도 동시에 북미관계를 단계적으로 개선하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수립도 단계적으로 이루어 나가야한다. 미국이 그때까지도 경제제재를 계속한다면 북미관계가 그때까지 개선될 리 없고 북미관계가 개선되지 않으면 완전한 비핵화를 향한 북한의 노력을 다그치기도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유엔제재의 해제를 비가역적 비핵화의 완료와 연계시키기를 고수한다면 단계적 접근보다는 일괄해결을 택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평소 요구해온 경제제재의 해제, 주한미군의 철수,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중단 같은 사안에 관해 일체 언급을 않는 것에 대해 트럼프는 속으로 깊이 감사하고 있고 김정은 위원장을 협상의 천재로 치켜세우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그런 사안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면 트럼프가 자진해서 북미관계를 전환하기 위해 주동적 조치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무슨 압력을 받아 억지로 실행하는 듯이 인상을 줄 수 있다. 엄밀히 말해 북미정상회담은 무슨 협상을 하는 회담이 아니었다. 협상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bottom-up)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이번은 정상회담의 날짜부터 먼저 정해놓고 시작되었으니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top-down) 형식이다. 양쪽 정상이 무엇 때문에 만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미 다 충분히 인지한 상태에서 시작된 회담이다. 그 결과가 한반도비핵화라는 공동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쪽이 결의한 공동의 약속과 공동의 원칙을 선언한 공동성명이었다. 그럼에도 이란이 경고했듯이, 미국이 공동성명에서 입 발린 약속만 늘어놓고 뒤돌아서서는 전혀 실천을 않는 일도 생길 수 있을까?

  그런 우려는 이번 북미정상회담의 성격을 몰라서 생긴 것이다. 북한은 신년 초에 핵 무력의 완성을 선포한 바 있다. 이는 북한이 앞으로는 핵·미사일시험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어졌고 그 대신 핵·미사일을 동원한 군사훈련을 태평양을 무대로 하겠다는 뜻이었다. 한미합동군사훈련 때마다 미국이 전개하는 핵전략자산(핵전투기)의 동원에 대항하여 북한도 핵전략자산인 핵·미사일을 동원해 같이 태평양 위에서 군사훈련을 하겠다는 것이다. 괌을 비롯한 태평양을 무대로 군사훈련을 전개하면 미국은 그때마다 북한이 군사훈련이란 핑계로 불시에 미국을 핵·미사일로 공격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초비상경계태세에 들어가야 한다. 한미합동군사훈련이 1년 내내 쉬지 않고 이어지는 바람에 그동안 북한은 초비상경계태세를 1년 내내 유지해야만 했다. 특히 농촌인력이 집중되어야 하는 시기에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집중되니까 농촌일손부족이 늘 심각했다. 북한도 이제 태평양 위에서 핵·미사일을 동원한 군사훈련을 1년 내내 쉬지 않고 이어간다면, 태평양을 오가는 해상무역이 1년 내내 전면 통제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미국도 이제는 고통을 당하게 된다. 한미합동군사훈련의 비용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불어나게 된다는 것을 트럼프는 이미 감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금년 초부터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통한 군사적 대립관계의 해소가 트럼프대통령의 최우선 국정과제로 되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북한과의 직접대화의 통로가 다 막혀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북한은 미국의 대화요청을 거부했고 미국이 대북적대행위부터 먼저 중단해야 북미대화에 응할 수 있다고 답해왔다.

  신년 초 남북대화가 재개될 기미가 보이자 누구보다 반가와 한 사람은 바로 트럼프였다. 우리를 축복한다는 말까지 했다. 금년 2월에 있게 될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중단을 우리에게 미리 양해를 구할 정도였다. 문재인대통령이 남북대화 시에 북미대화를 중재할 기회도 있을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북미관계를 이대로 둔 채로는 남북관계를 한 걸음도 진척시킬 수 없다.’는 남측특사의 간곡한 권유에 김정은 위원장이 ‘민족의 통일에 도움이 된다면 무언들 못 하겠는가’라는 취지에서 북미정상회담을 흔쾌히 받아들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중재가 없었다면 아마도 금년 4월의 한미합동군사훈련 때부터 북한은 태평양상에서 핵·미사일을 동원한 군사훈련을 대규모로 벌렸을 것이었다.

  사정이 이러한데 이란이 경고한 대로 미국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입으로만 달콤한 약속을 하고 뒤돌아서서 나 몰라라 한다면 북미관계를 2018년 1월 이전으로 되돌리는 어리석은 행위를 한다는 의미이다.  이번 북미정상회담이 끝날 때까지 북한의 언론보도가 북미정상회담에 대해 일체의 언급을 자제한 이유도 아마도 미국이 그런 어리석은 짓을 또 할지 모른다고 불신한 때문으로 보인다.

4. 단계적 접근? 일괄해결?

  이번 북미정상회담은 한 차례에 그치지 않고 향후에도 여러 차례 예고되어 있다. 모든 것을 한 번에 결정하기보다는 동결 대 동결, 혹은 쌍방동결의 동시적 실천을 단계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되고 있다. 미국은 미리 자기의 역할과 책임을 찾아 1단계조치로 한미합동군사훈련부터 중단했다. 그러나 남한 언론은 한미합동군사훈련은 이미 북한이 양해한 적 있기 때문에 일부러 자진해서 미리 중단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부터가 사실은 정신이 나간 소리이다. 세상의 어느 나라가 군사훈련을 적대국으로부터 양해를 얻어가며 하는가? 미국이 언제부터 북한의 양해를 받아가며 군사훈련을 하든가 안 하든가 했나? 그런 얘기는 북미관계가 금년 초부터 근본적으로 뒤바뀌었음을 전혀 감을 잡지 못한 탓이다.

  원래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중단>은 북한이 <핵·미사일시험발사의 중단>과 맞교환하자고 2015년 1월과 2016년 1월 두 차례에 걸쳐 미국에 제안했다가 거부당한 것이다. 그러다가 2017년 7월 북한이 핵·미사일을 동원한 군사훈련장소를 괌 부근 해상으로 옮기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미국은 태도를 바꾸어 북미대화를 요청했다. 북한은 미국이 먼저 대북적대행위부터 중단해야 북미대화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이때 답했다. 그랬기 때문인지 이제는 미국이 자진해서 한미합동군사훈련도 먼저 중단할 뿐 아니라 대북비판이나 대북이미지의 희화화도 삼가하고 미국인들의 대북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고 있다.

  미국이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단한다고 해서 미국의 대북적대행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대북적대행위를 중단한다는 것은 군사적 대북위협뿐만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적대행위를 전부 중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 미소냉전시기에 미소 두 나라가 평화공존은 했지만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이념적으로는 적대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에 비해, 북미관계는 전혀 다른 비적대적 관계를 가져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확성기방송, 삐라살포, 인권공세, 북한 가짜뉴스, 영상물과 출판물을 이용한 반북선전활동, 국제무대에서의 왕따 놀이 같은 적대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합동군사훈련만 자진하여 중단했을 뿐 아니라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중단에 대해 북한에 대한 미국의 도발이기 때문에 중단한다고 대답했다. 북미정상 사이의 핫라인도 미국이 먼저 자진해서 제공했고, 북한의 인권유린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온 유엔인권위원회로부터도 미국을 탈퇴시켰다.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한의 지도자를 추켜세우고 북한지도자에 대한 북한인민들의 경배태도를 미국도 본받았으면 좋겠다고 추켜세웠다.

  노동신문이 보도한 ‘단계별, 동시행동원칙’의 최종목적지를 미국은 20%의 한반도비핵화에 두고 있다. 비핵화가 20%에만 이르면 되돌아가기 어려운 임계점에 왔다고 보고 유엔경제제재의 해제와 주한미군의 철수를 그 반대급부로 약속하였다. 북한의 최종목적지는 다르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더하여 미국의 대북적대행위의 중단이다. 왜 CVID에 대한 요구를 꺼내지 않을까? 북한도 공식적으로는 미국의 CVID요구를 완곡하게 거부한 적 있다. 다만, CVID를 요구하려면 미국도 거기에 상응해서 CVIG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대꾸했다.

  CVID는 미국의 주장에 따르면 기존의 보유핵무기만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핵능력까지 제거하는 것이다. 지하 곳곳에 숨겨놓은 핵무기를 일일이 찾아 제거해야할 뿐 아니라 핵관련 기술자와 과학자도 국외로 다 내보내어야 한다. 미국은 이 모든 과정을 사찰단을 파견해 일일이 검증해야 안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CVID는 상대방의 내장 속까지 다 꺼내어 보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런 요구라면, CVIG는 상대방의 머리와 가슴까지 확고하게 지배해야 직성이 풀리는 요구이다. 북한이 핵을 어디다 숨겨놓았는지, 나중에 핵을 다시 만들지 않을지를 미국이 검증해야하듯이 북한도 미국의 정신과 마음을 체계적으로 검증할 권리가 있다. 언제 어떻게 미국이 뒤통수를 칠지 모르므로 그들의 책자, SNS, 문화적 및 예술적 표현에서까지 아시아나 북한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담고 있지는 않은지, 반북감정을 지닌 사람이 국가의 중요정책을 담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철저히 차단하고 검증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친북인사라도 또 언제 어떻게 반북으로 바뀔지 모르지 않은가, 그것을 방지할 대책도 북한의 마음에 쏙 들도록 미국이 내놓아야 한다. 그래서인가 싱가포르회담 직전까지도 북한으로부터 CVID 약속을 꼭 받아내겠다고 다짐했던 폼페이오가 싱가포르회담 이후에는 완전한 비핵화란 표현 속에 이미 CVID가 다 들어있다고 연막을 쳤다.

5. 단계적 접근의 함정

  노동신문이 밝힌 ‘단계별, 동시행동원칙’에 대해 미국도 나름의 단계별, 동시행동원칙을 찾아가고 있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트럼프는 ‘20%만 비핵화를 완료하면 완전한 비핵화를 향한 불가역적 임계지점’이라고 보고 유엔경제제재의 해제와 주한미군의 철수를 약속했다. 이에 대해 폼페오 장관은 보다 더 구체적으로 ‘미국본토에 대한 북한의 타격능력 제거’, 즉 ICBM의 폐기, 핵시험장 및 미사일 발사장의 폐쇄, 미사일 엔진시험장의 폐쇄가 모두 불가역적 비핵화 조치에 해당한다고 정의했다. SLBM이나 중단거리 미사일은 아예 비핵화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남한지역의 100% 비핵화는 주한미군의 철수에 의해서만 완전한 비가역적 비핵화를 이룬다. 그러나 남한 내부의 핵무기와 핵시설만 철거하고 미 지상군을 남겨두면 남한지역 비핵화의 20%에 불과하다. 미 지상군만 있으면 언제든지 미국의 핵전략자산을 쉽게 이곳으로 접근시킬 수 있다. 북한의 ICBM폐기를 미국에 대한 핵위협을 비가역적으로 해소하는 20%의 비핵화로 평가한 트럼프는 이러한 북의 20% 비핵화와 남의 100% 비핵화를 맞교환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20%의 비핵화, 즉 장거리핵미사일이 제거되고 나면 미국이 마음을 바꾸어 먹을지도 모른다.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할 핑계거리는 얼마든지 만들면 된다. 남한주민의 다수가 주한미군의 계속주둔을 원하고 있다고 우기면 북한도 어쩔 도리가 없다. 남한지역 비핵화의 100%에 해당하는 주한미군의 철수를 북한지역 비핵화의 100%가 완료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100% 대 100%의 등가교환을 하자고 수정제안을 할 것이다. 바로 여기에 단계론적 접근의 함정이 있다. 그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주한미군이 철수하려다말고 이미 핵무장을 100% 해제한 북한을 향해 돌아서서 총부리를 다시 겨누면? 그러니 북한은 주한미군이 완전히 철수할 때까지 장거리 핵미사일의 해체를 무기한 연기하며 버틸 수밖에 없다.

6. 세계비핵화로의 길

  북한의 갈 길은 아직 멀다. 주한미군의 완전한 철수가 이루어질 때까지 장거리 핵미사일의 해체를 무기한 연기하며 버티는 것은 전략적으로 옳지만, 다른 비핵화과정까지 다 뒤로 미루고 주한미군철수만 기다리면 세월만 낭비한다. 북한의 목표는 100%의 완전한 비핵화에 있기 때문에 당분간 주한미군철수문제를 건너뛴 채 장거리 핵미사일만 제외하고 비핵화과정을 조속히 끝마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다. 끝까지 일괄해법을 모색하는 것도 방법이다. 아직은 주한미군을 그대로 둔다고 해서 한반도비핵화과정의 장애로 되지는 않는다.

  주한미군철수문제만 건너뛰면 그 다음의 수순은 그야말로 순풍에 돛단 듯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다. 미국을 제외하면, 이미 다른 핵보유국들은 사실상 비핵화의 문턱에 거의 다 왔다. 그들은 핵무기가 있어도 타국에 대해 핵으로 공격할 것처럼 위협하지도 않고, 다른 나라에 핵우산을 제공하지도 않으며, 패권국가가 되려고도 하지 않는다. 대외적으로 핵을 없애겠다고 선언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비핵화를 선언한 나라나 마찬가지이다. 문제는 미국이다. 미국만 다른 나라를 핵으로 위협하고 있고 미국만 핵우산을 제공하여 그것을 근거로 패권을 행사한다.

  그러나 미국을 제외한 다른 모든 나라가 세계비핵화과정에 이미 들어왔으면 미국 외에는 다른 나라를 향해 핵위협을 할 나라도 없다. 그러면 핵 없는 나라들이 구태여 미국의 핵우산 아래로 들어가 패권의 지배를 받으려고 하겠는가? 미국의 패권은 절로 무너진다. 핵우산이 불필요해지고 핵보유국으로서의 패권도 무너지면 세계유일의 핵보유국으로 남겨진들 미국에게 무슨 이점이 있을까? 아래 표는 맨 앞에서 제시한 핵보유국, 핵미보유국, 비핵화국의 비교를 미국만 세계유일의 핵보유국으로 남았을 때의 상황에 맞추어 다시 비교해 본 것이다. 맨 아래 줄부터 읽어나가자.

  우선 패권주의의 몰락이다. 미국 외에는 핵공격을 할 나라가 없으니까 미국의 핵우산이 필요 없고, 미국의 핵우산이 필요 없으니 미국의 패권적 지배도 받을 필요가 없어진다. 이제 싸움이 일어난다면 미국 외에는 전부 재래식 무기로만 싸울 것인데 핵을 가진 미국과 재래식 무기로 싸울 나라는 아무 데도 없다. 그러나 자기 민족을 지키기 위해 재래식 무기를 갖고도 미국과 전쟁을 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것이 테러전이다. 테러전쟁에는 대응 방법이 마땅히 없다. 테러와 반(反)테러 사이의 전쟁방법은 날로 지능화되고 현대화되고 있고 아직도 미국은 초비상경계태세를 1년 365일 쉴 틈 없이 이어가고 있다.

  미국 외에는 어느 나라도 핵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미국은 다른 나라로부터 핵공격의 위협을 받을 일도 없다. 비핵화국도 함부로 핵공격 위협은 받지 않는다. 어딘가 숨긴 핵이 있을 것 같은 가능성 때문이다. 핵공격 위협에 노출된 나라는 처음부터 핵을 보유한 적이 없는 나라뿐이다. 형식상으로는 핵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는 비핵화국과 핵미보유국이 모두 같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핵공격 위협에 노출되는가 안 되는가로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

  세계비핵화는 불문율에 의해 총기소지가 금기시된 사회와 같다. 누가 총기를 몰래 갖고 있다가 강도가 집안에 들어왔을 때 총기를 난사해도 그것이 정당방위였느냐 아니었느냐만 문제가 되고 총기사용 자체는 문제가 안 된다. 불문율이기 때문에 누군가 그 금기를 깨트리고 공개적으로 총기를 소지해도 규제할 방법이 없다. 같은 원리에 의해 비록 세계비핵화의 문턱에 들어섰더라도 유독 미국만 끝까지 핵을 가지겠다고 우기면 어쩔 수 없다. 총기소지가 금기시된 사회에서 유독 혼자 총기를 공개적으로 지니고 있는 사람과 같다.

  그러나 혼자 공개적으로 총기를 소지하고 다니면서 깡패노릇을 한다면 같은 깡패노릇이라도 더 주목을 받고 더 나쁜 사람으로 지탄을 받는다. 그것이 쌓이면 결국엔 주변으로부터 다구리를 당할 수밖에 없다. 같은 원리로 세계비핵화흐름을 거부하는 유일한 나라로 미국만 남으면 정말로 미국을 불로 다스릴 날이 가까워진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남한이 주한미군을 계속 붙들고 있으면 미국을 불로 다스릴 때 한국도 유감스럽지만 미국과 같은 운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남한의 민초들이 다 같이 일어나 판문점선언의 이행에 만세를 부르고 우리의 운명을 우리 손으로 구원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할 뿐이다.

북미공동성명 이후의 세계질서”의 2개의 댓글

  • 2018년 6월 26일 1:1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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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게시글 감사합니다.

    로그인 잘 되고요~~
    도표를 [폭]맞추기로 확대하니 흐리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 2018년 6월 26일 1:5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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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그런 문제가 있군요.
      그 도표를 그냥 그림 파일이 아니라,
      아마 일러스트레이터 파일로 만들어야 하는가 보군요.
      아직 그에 대한 해결책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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