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원역사(창1-11장)와 창조 및 계명의 중요성창세기 1장에서 11장까지를 통상 '원역사(原歷史)'라고 부르는데, 이는 인류의 기원과 근원적인 문제들을 다루는 매우 중요한 성경 부분이다. 장재형 목사는 이 원역사를 살펴보면 이후 성경 전체가 말하는 큰 주제들이 집약적으로 담겨 있음을 강조한다. 실제로 창세기 1, 2장은 창조와 계명에 대해 말하고, 창세기 3, 4장은 죄와 타락에 대해 말하며, 5장은 족보, 6장과 7장은 심판과 구원에 대해 다룬다. 결국 1장에서 11장까지의 서술이 '구원의 역사'를 깊이 이해하기 위한 기본 골격을 제공해준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원역사는 단지 과거의 '옛날이야기'로서 끝나지 않는다. 장재형 목사는 예수께서 "노아의 때에 된 것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눅17:26)고 말씀하셨음을 지적한다. 즉 노아의 때, 곧 심판과 구원의 장면이 장차 올 마지막 때의 '원형(archetype)'이 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죄와 타락을 올바로 알기 위해서는 창세기 3, 4장을 주목해야 하며, 이 원역사가 종말론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까지 적용될 만큼 깊고 넓은 함의를 지닌다는 해석이다.
창세기 1, 2장을 보며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 중 하나는 '천국에는 계명이 있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이 천국을 '아무런 규범이나 법이 없는 자유로운 낙원'으로 오해하지만, 성경은 천국 또한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움직이는 완전하고 거룩한 영역임을 일관되게 가르친다. 장재형 목사는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동산 각종 나무 열매는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창2:16-17)고 말씀하신 점을 중요하게 짚는다. 이는 '무법천지'가 아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선포하시며 "계명"을 통해 인간에게 참된 자유와 생명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어린 통치방식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창조의 아름다움과 자유가 인간의 범죄로 인해 심각한 균열을 일으킨다. 아담과 하와는 금령을 어겼고, 그 결과 죽음과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롬5:12 참조). 이를 통해 성경은 하나님께서 피조물에게 자유의지를 주심이 곧 악을 창조하셨다는 의미가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악은 하나님이 본래 의도하신 선한 창조에 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과 천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로 선을 선택하고 창조주를 경배하며 그 질서를 지켜야 했지만, 일부가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함으로써 타락이 일어났다. 장재형 목사는 "왜 아담을 유혹받지 않도록 만드시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랑의 결단'을 존중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진정한 사랑은 결코 강제로 이뤄지지 않는다. 만일 하나님께서 인간을 '프로그램'처럼 만드셨다면, 사랑의 본질도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장재형 목사의 설명에 따르면, '뱀'으로 상징된 사탄은 하나님의 세계 질서를 어지럽히고 인간을 타락시키는 주된 요인이지만, 결코 하나님과 대등한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창조하신 절대주권자이시고, 사탄은 타락한 피조물이다. 따라서 성경의 기본 구도는 '이원론'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 속에 일시적으로 허락된 사탄의 활동'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천국에 계명과 질서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마귀를 비롯한 타락 세력이 결국 심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주권을 분명히 드러낸다.
창세기 2장 17절에 명시된 금령("먹으면 정녕 죽으리라")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곧 생명이다. 이 말씀이 지켜지면 평안과 생명이 보장되지만, 불순종하면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다. 자유의지로 이 말씀에 '예'라고 대답하는 것이 인간이 맡은 존엄한 역할이었다. 그러나 원역사가 보여주는 인간의 비극은 마귀가 유혹했을 때 하와가 그 말을 듣고, 아담도 함께 금지된 열매를 먹음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길을 선택했다는 데에 있다. 그 결과 인간의 내면에는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들어왔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선과 악의 기준이 무너지는 참담한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천국에 계명이 있다는 사실은 구원 이후에도 이어진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사함을 얻은 후에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지키며 그분의 통치를 인정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우리에게 죄 사함과 구원을 베풀어 주셨으나, 그것을 '아무렇게나 살아도 괜찮다'는 의미로 곡해해서는 안 된다. 장재형 목사는 "천국은 질서가 생명으로 작동하는 나라"라고 말하며, 본래 인간의 창조 목적 역시 하나님을 순종하고 경외함으로써 그 질서와 사랑에 참여하는 것이었음을 거듭 강조한다. 요약하자면 원역사에서 제시된 창조와 계명의 중요성은 구원의 본질, 곧 죄에서 구원받아 하나님 질서 안에서 사는 삶이 어떤 것인지 아주 선명하게 보여준다.
Ⅱ. 사탄(뱀)의 정체와 인간 타락의 과정장재형 목사는 창세기 3장에 기록된 '뱀'의 유혹 장면을 매우 심도 있게 다룬다. 성경은 이 뱀을 단순한 들짐승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 곧 마귀의 상징으로 이해한다(계12:9, 20:2 등). 창세기 3장 1절에서 뱀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더라"고 소개되는데, 이는 사탄이 본래 천사였지만 교만으로 말미암아 타락하였고, 그 결과 하나님께 반역하는 악의 세력이 되었음을 시사한다. 그가 하는 첫 번째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다. 곧 "참으로 하나님이 너희에게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3:1)라는 말로 접근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금령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오해하도록 교묘히 부추긴다.
창세기 3장 4절에서 뱀은 하와에게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한다. 이것은 창세기 2장 17절에서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라고 선언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뒤엎는 거짓이다. 장재형 목사는 여기서 사탄의 근본 전략, 즉 "진리를 거짓이라고 하거나, 진리가 없다고 말하는 식의 파괴 행위"가 두드러진다고 설명한다.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어기게 만드는 가장 위험한 유혹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부정하고, 하나님이 주신 선악의 기준을 무너뜨리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뱀의 말에는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3:5)는 달콤한 제안이 있다. 이 말은 "왜 하나님만 법과 질서의 주체자로서 선악을 결정하는가? 너도 그렇게 될 수 있다"라는 식으로 인간 안에 '교만'을 심어준다. 사탄 자신이 교만으로 타락했기에, 동일한 교만을 인간에게도 전염시키며 "같이 하나님이 되어보자"고 유혹하는 것이다. 장재형 목사는 이때 인간은 자유의지로 뱀의 말을 들을 수도, 거부할 수도 있었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하와가 그 열매를 바라본즉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여겨져서" 결국 따먹고, 아담에게도 주어 함께 범죄한다(창3:6).
이 과정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 타락의 '단계'는 다음과 같다. 첫째, 사탄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거나 의심하게 만든다. 둘째, 금지된 열매를 바라보는 마음에 '정욕'이 일어난다(요일2:16의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 셋째, 결국 행동으로 죄를 범한다. 그리고 넷째, 죄를 범한 뒤에는 숨고, 부끄러워하고, 심지어는 죄를 전가(轉嫁)하는 태도를 보인다. 아담이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3:12)라고 말함으로, 하나님과 하와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에서 이런 죄의 특성이 아주 선명하게 드러난다. 장재형 목사는 이것이 '죄인의 기본 심리'이며, 스스로 죄책감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거나 남 탓을 하는 패턴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창세기 3장 7절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나자 "그들의 눈이 밝아져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인간이 죄를 범했을 때 자기 벌거벗음을 자각하고 부끄러움, 두려움을 느낀다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동물은 아무리 사납고 서로 물어뜯어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은 죄를 지었을 때 본능적으로 수치심을 느끼고, 영적 낯빛이 어두워지며, 하나님을 피하려고 숨어버린다(창3:8). 장재형 목사는 이것을 두고 "인간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갈망하지만, 죄가 들어오면 정반대로 그분을 피하는 모순적인 상태에 빠진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마귀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는 스스로 죄를 짓고 타락한 천사들(유1:6) 가운데 수장과 같은 존재이며, 마치 이 땅에서 '같이 죽자'는 심산으로 인간을 유혹한다. 왜냐하면 마귀는 자신이 이미 하나님께 반역해서 끝내 심판받을 운명임을 알기에, 한 영혼이라도 더 죄 속에 묶어두고 싶어 한다. 이 과정에서 사탄은 권세와 재물, 성적 쾌락, 거짓 교리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인간의 눈을 현혹한다.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탐스럽다"(창3:6)고 여겨지는 '나무 열매'가 바로 현대 문화 전반에 확대 재생산된 것이기도 하다.
장재형 목사는 "우리는 마귀를 알아야 하고, 마귀를 조롱해야 하며, 그의 계략에 속지 않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마귀는 이미 하나님께 저주받았고(창3:14), 최종적으로는 불못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존재다(계20:10). 그러나 종말이 오기 전까지 그는 "사탄의 회(會)"를 만들어 계속해서 반역을 모의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마귀를 두려워할 필요 없이, 오히려 그를 결박하고, 그 세력을 깨뜨리며, 하나님의 진리를 붙들어야 한다.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4:7)는 말씀이 바로 이 점을 강조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되었으므로, 더 이상 마귀가 주는 거짓 메시지에 휘둘리지 않고 자육(自育)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 타락의 가장 근본적인 뿌리는 '하나님처럼 되려는 교만'이며, 그 이면에는 사탄의 간교한 속임수가 있다.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짓으로 둔갑시키고, 허황된 욕망을 부추기며, 결국 하나님과 인간을 갈라놓으려 한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의 죄는 전적으로 마귀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다. 아담과 하와가 금령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탄의 말을 따랐듯, 인간은 스스로 죄를 선택함으로써 책임을 피하기 어렵게 된다. 요컨대 사탄의 정체와 인간 타락의 과정을 살피면, 우리가 왜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해야 하고', '자신의 죄를 회개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야 하는가'를 절감하게 된다.
Ⅲ. 하나님의 구원 약속(창3:15)과 새 아담(그리스도)의 승리인간이 죄에 빠진 직후,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3장 15절에서 가장 중요한 구원의 약속을 선포하신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원시복음(proto-evangelium)'이라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훗날 사탄의 세력을 박멸할 구주가 오리라는 점을 암시하신다. 장재형 목사는 이 언약이 구약 전체를 관통해 신약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고 강조한다.
창세기 3장 15절의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나, 그는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라는 문구에는 두 가지 대조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발꿈치를 물려 상함을 입는' 것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가 받으실 고난을 예표하고, '머리를 상하게 하는' 것은 사탄과 사망의 권세를 결정적으로 무너뜨릴 그리스도의 승리를 말한다. 사탄은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죽였으나, 결국 예수님은 부활을 통해 사탄의 궁극적인 패배를 확정지으셨다. 이 약속이 이사야 53장, 빌립보서 2장, 요한복음 19장의 십자가 사건,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이르는 일련의 구속사에서 풍성하게 드러난다.
신약성경 로마서 5장은 예수님을 '새 아담'으로 소개한다.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또한 한 사람(예수)으로 말미암아 의와 생명이 들어왔다는 것이다(롬5:12-19). 아담이 범죄함으로써 전 인류가 죄의 종살이에 들어갔는데, 그리스도가 순종함으로써 새로운 생명의 길이 열렸다는 핵심 진리를 선포한다. 여기서 장재형 목사는 빌립보서 2장 6-8절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겸손과 자기 비움(케노시스)"을 강조한다. 아담이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려고 한 교만'으로 타락했다면, 그리스도는 정반대로 '하나님의 본체'이심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낮추어 종의 형체를 입고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죄의 지배를 깬 것이다. 즉 초대교회 성도들이 고백했던 그리스도의 순종과 사랑이야말로, 사탄에게 빼앗긴 세상과 사람들을 되찾는 '하나님의 지혜'라는 설명이다.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뒤 스스로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부끄러움을 가렸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죽옷을 해 입히셨다(창3:21). 이는 단순히 '옷을 지어주심' 이상의 깊은 의미가 있다. 가죽옷을 마련하려면 희생 제물이 필요하다. 성경은 여기서 이미 '피 흘림 없이 죄 사함이 없다'(히9:22)는 진리를 암시한다고 해석한다. 장재형 목사는 이 장면을 두고 "죄를 깨닫고 부끄러워하는 아담과 하와가 그저 벌을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가죽옷을 제공하시며 구원의 약속을 보여주신다. 이 모습은 십자가에서 인류를 위해 대속(代贖)의 희생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한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하나님이 준비하신 '여자의 후손', 곧 구세주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죄책에서 자유하게 되며, 다시금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요1:12, 갈4:4-5). 뿐만 아니라 히브리서 10장 19절 이하에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라고 말하듯이, 이제는 더 이상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에 숨지 않아도 된다는 구원의 확신을 누리게 되었다. 장재형 목사는 이 점이 "창세기 3장 이후 달라진 인간의 영적 지위를 극적으로 회복시키는 구속사적 전환"이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우리는 원역사를 통해 죄와 타락의 과정을 분명히 볼 수 있고, 동시에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구원 언약이 얼마나 분명하고도 세밀하게 준비되어 왔는지를 발견하게 된다.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구세주에 대한 약속은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전해졌고, 노아 시대의 심판과 구원(창6-9장),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언약(창12장), 이후 모세와 율법, 왕정 시대와 예언자들, 그리고 결론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통해 완결된다. 이 일련의 흐름에서 창세기 1-11장은 그 '시작점'이자 '뿌리'로서, 인간 실존의 현실과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왜 필요한지를 낱낱이 드러내준다.
장재형 목사는 여기서 "구원의 약속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개인의 삶에서 여전히 죄의 유혹이 얼마나 강력하게 역사하는가"를 되짚어야 한다고 말한다. 비록 예수 그리스도가 뱀의 머리를 깔아뭉개셨을지라도, 사탄의 최종 심판이 완전히 눈앞에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여전히 그 세력이 교묘히 사람들을 미혹한다. 그래서 신약성경 곳곳에서 사도들은 "깨어라, 근신하라, 너의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벧전5:8)고 경고한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는 선포도 함께 주어진다. 우리는 더 이상 마귀가 주장하는 '교만'이나 '자기중심성'에 묶일 이유가 없다. 그리스도의 의로 덧입고,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부단히 죄를 대항하고 살아갈 수 있다.
결국 구원은 단순히 "죄 사함을 받았으니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하나님이 주시는 질서) 아래에서 회복된 삶을 누리는 데까지 이어진다. 천국에는 계명이 있고, 그것은 곧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유의 삶'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15장에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이라고 하셨듯이, 참된 자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연결되어 있을 때만 가능하다. 장재형 목사는 우리가 이 원리를 깊이 깨달을수록, 아담처럼 '네 탓이다'라는 죄의 전가를 벗어나 그리스도처럼 '내가 지겠다'는 사랑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새 아담이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신 길이며, 성령 안에서 가능한 삶의 방식이다.
정리하자면, 창세기 3장 15절에 나타난 '여자의 후손'에 대한 구원 약속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사랑과 계획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이 자유의지로 죄를 범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와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아들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엄청난 대속의 길을 예비하셨다. 이것이야말로 원역사를 통해 확인되는 비극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이며, 새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얻게 된 은혜다. 그리고 이를 믿고 받아들이는 우리가 부름받은 위치는 곧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공동상속자'(롬8:17)가 되어, 마귀를 대적하고 이길 수 있는 영적 권세를 누리는 것이다.
장재형 목사는 이 점을 거듭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구원 언약은 창세기에서 이미 시작되었고, 우리에게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한 성취를 이뤘다. 이제 교회는 그 빛에 참여하여 세상을 밝히고, 다시 오는 주님의 날까지 깨어 있어야 한다. 마귀는 이미 심판선고를 받았으나, 최후의 완전한 멸망 전까지 한 사람이라도 더 넘어뜨리려 혈안이 되어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아담의 길이 아닌 새 아담의 길을 따라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것이 원역사가 주는 궁극적인 교훈이자, 모든 성도가 붙들어야 할 복음의 정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