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확증된 하나님의 사랑
장재형(장다윗)목사가 강조하듯, 로마서 5장 6-11절은 죄와 구원에 관한 바울 사도의 가르침 중에서도 특별히 "죄인 되었을 때에, 원수 되었을 때에"라는 표현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놀랍고 역설적인 것인지를 보여준다. 바울은 로마서 1장 18절부터 3장 20절까지 인간의 죄악상과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인간 실존을 묘사한다. 이어 3장 21절에서 4장 25절까지는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 Alone)", 즉 그리스도의 의로 인해 우리가 의롭다 여김을 받는 복음을 설명한다. 5장부터는 구원받은 자의 실존과 '성화'의 과정을 다루면서, 특별히 5장 6절부터 11절에 이르러 바울은 "연약할 때, 죄인 되었을 때, 원수 되었을 때"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이 얼마나 크고 기이한지 선포한다.
우리가 아직 연약했을 때, 곧 우리로서는 어찌할 수도 없고, 어떤 능력으로도 자력 구원이 불가능했던 그때(롬 5:6), "기약대로(in due time)" 예수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들을 위해 죽으셨다. 이는 바울이 말한 기약대로(갈 4:4, 엡 1:9)라는 '때가 찼다'는 개념과 이어지는데, 곧 인류가 문명과 제도를 만들고 교만과 자기 의를 쌓아 올렸으나, 결국 영혼의 고통만 깊어진 그 시점에, 비로소 하나님께서 질적 전환을 위해 직접 아들을 보내셨음을 뜻한다. 장재형목사는 여기서 "우리의 영적 상태가 완전히 연약하고 무력했던 상황"에 주님의 사랑이 임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때가 바로 인간이 필사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갈망할 수밖에 없는 카이로스(Kairos)의 시간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장재형목사는 이 말씀을 해설하면서, 그리스도의 죽음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자기의 사랑'을 확실하게 보여주시는 사건이라고 강조한다. 세상에서 말하는 사랑은 주로 "사랑할 가치가 있는 대상"에게 주어지기 쉽다. 그러나 바울은 "의인을 위해 죽는 자도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해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다(롬 5:7)"고 말한다. 선인이나 의인과 달리, 원수 혹은 죄인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행위는 이성적으로나 경험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그럼에도 그리스도께서는 경건치 않은 원수를 위해 기꺼이 죽으셨고, 이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확증되었다고 한다.
이때 "원수"라는 표현은 단순히 감정적 반감을 넘어,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근본적 반역, 불순종, 그리고 인간이 만든 세속 문명의 불경건함 등을 상징한다. 원수 된 세상은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문화로 가득하며, 사람들은 교만과 자기 의, 불신앙 가운데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지만 결국 더 깊은 절망에 빠져 버린다. 이런 세상이 하나님을 적대하고 있으나, 하나님의 역설적 사랑은 그 원수를 구원하고자 아들을 내어주시는 길을 택하셨다. 장재형목사는 이 점을 가리켜 "하나님의 무조건적이고도 역설적인 사랑"이라 언급한다.
무엇보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생명을 바친다는 것은 존재 자체를 비(非)존재화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죽음만큼 큰 공포는 없고,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최종적 파멸이지만, 예수님은 바로 그 죽음을 통해 "원수를 위해 자기 생명을 내어주시는" 궁극의 사랑을 보여 주셨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죽으심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사랑이 "확증되었다"고 선언한다. 여기에는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자비가 담겨 있다. 장재형목사는, 세상의 어떤 논리나 이성도 이 '죽음으로 드러난 사랑'을 이길 수 없다고 말하며, 이 진리가 복음의 본질이자 가장 큰 능력임을 거듭 강조한다.
이 사랑은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라는 말씀과도 정확히 맞닿는다. 바울의 표현과 요한의 표현이 다를 뿐, 결국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 희생 속에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구원의 길이 나타난 것이다. 죽어 마땅한 죄인이 의롭다 함을 받았고, 이제 원수 되었던 자리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롬 5:10)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희생 없이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은혜다. 장재형목사는 바로 이 점에서, 우리가 평생토록 잊지 않아야 할 복음의 핵심이 "죄인인 나를 위해 주님이 죽으셨다"는 사실임을 강조한다. 인간이 끝없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비웃었음에도 불구하고, 주께서 겸손히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알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아가페(Agape)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장재형목사는 또한 예수님의 가르치셨던 "원수를 사랑하라"는 황금률(마 5:43-48)을 연결해 설명한다. 율법은 '나에게 잘하는 자에게 선으로 갚는 것' 정도를 기준 삼지만, 예수님은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명하셨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온전성을 닮아가는 길이며, 주님의 죽음으로 가장 극명히 드러난 사랑의 방식이다. 세상의 자기중심적 이성과는 완전히 다른, 전혀 낯설고 높은 차원의 사랑이 십자가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 말하는 화목(reconciliation)은 '길을 잃은 자를 찾아 나서는' 하나님의 전적인 희생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처럼 죄인을 위해 죽으신 사랑을 보며, 우리는 자기연민이나 절망에서 벗어나 "구원의 즐거움"으로 들어가게 된다(롬 5:11). 하나님이 우리 죄를 탕감하고, 더 나아가 기꺼이 자신의 자녀로 삼으신 은혜를 깨달을 때, 복음의 진정한 능력이 내 삶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장재형목사는, 이것이 바로 교회의 예배와 신앙생활의 핵심이라고 역설한다. 즉, "주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회상하며, 그 은혜를 구체적인 삶 속에서 적용하고, 이를 전파하는 것이야말로 믿음의 길이다.
이 모든 복음의 토대는 "원수 되었을 때"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 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어떤 제도나 윤리적 가르침을 통해 점진적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순전히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곧 "보혈"로 인한 것이며, 이는 단번의 사건이지만 동시에 우리의 매일의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능력이 된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가리켜 "그리스도의 보혈이 가져다주는 놀라운 역설의 능력"이라고 칭하며, 이 복음을 들을 때마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감사와 기쁨, 그리고 회개와 결단이 일어나야 한다고 역설한다.
바울이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신 예수"(히 13:12-13)를 말하며, 우리 또한 그 치욕을 짊어지고 주님께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듯, 십자가는 비단 '구원받았다'라는 신학적 문장으로만 간단히 요약될 수 없는 진리다. 그것은 하나님이 죄인을 대하시는 태도, 곧 무한한 사랑과 자비, 그리고 용서의 자기 드러냄이다. 그렇게 자기를 내어주신 예수님의 죽음을 바라볼 때, 우리는 끝내 "사랑이 여기 있도다"(요일 4:10)라는 고백을 할 수밖에 없다. 장재형목사는 이 구절을 자주 인용하며, 하나님의 사랑이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확증된 사건"임을 강조한다. 교회가 이 확증된 사랑을 붙들고 세상을 섬기고 이웃을 용서하는 실천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진정한 복음의 능력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첫 번째 소주제에서 결론적으로 우리가 바라봐야 할 핵심은, 원수 되었던 죄인을 위하여 죽으신 그리스도의 사랑이야말로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체라는 점이다. 죄인은 '사랑받을 만한' 어떠한 자격도 없으나, 오히려 전복적 은혜가 개입되어 구원을 얻게 된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두고 "교회가 붙들어야 할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라 부른다. 우리의 예배와 성화는 이 시작점, 곧 '죄인인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을 늘 가슴에 새기는 데서 출발해야 하며, 그것이 하나님을 온전히 만나는 길이라고 가르친다.
2. 화목의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삶의 변화
로마서 5장 10절은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라고 선포한다. 장재형목사는 이 본문을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일회성 '죽음'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부활의 살아계심을 통해 구원의 완성을 누리게 된다는 점을 중점적으로 설명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화목제물이 되셔서 죄의 담을 허무셨기에, 우리는 이제 '심판받을 죄인'에서 '하나님의 자녀이자 벗'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관계의 회복만 의미하지 않고,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삶의 전환을 이끈다.
화목(reconciliation)은 바울의 복음 전체에서 핵심 주제 중 하나다(고후 5:18-19 참조). 율법으로는 의롭다 여김을 받을 수 없던 죄인이, 오직 예수의 피 공로를 힘입어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더 나아가 용납과 사랑을 받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장재형목사는, 이 '화목'이 단지 "내가 구원받았다, 끝"으로 국한되지 않는다고 한다. 바울은 5장 11절에서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고 선언한다. 이는 '영적 기쁨'과 '삶의 예배'를 동반한다는 뜻이다. 즉, 죄인의 자리에서 벗어나 의롭다 함을 받은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길은, 단지 어제까지의 죄와 심판에서 벗어나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고 기뻐하는 삶으로 인도한다.
장재형목사는 이 점을 두고, 구원이 단지 지옥에서 건져내는 '소극적 의미'의 탈출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는 적극적 의미의 충만한 삶'임을 자주 강조한다. 로마서 5장 1절부터 5절에서도 이미, 환난 속에서도 즐거워하며 소망 중에 인내할 수 있는 이유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진" 것이기 때문이라 말한다(롬 5:5). 이제 죄와 사망의 법을 깨뜨리고 새 생명의 법으로 들어온 자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다 함을 얻었을 뿐 아니라, '그 살아나심'에 동참함으로 일상의 삶이 근본적으로 변해야 마땅하다.
구약의 화목제(레 3장, 7장 등)를 살펴보면, 죄를 지은 이스라엘 백성이 짐승에게 안수함으로 죄를 전가하고, 짐승을 잡아 그 피를 흘림으로써 죄사함과 화해를 얻는 의식이 진행된다. 거기서 흘려진 피, 그리고 모든 죄를 지고 광야로 쫓겨나는 희생양(scapegoat)은 죄인이 "내가 죽어야 하나, 대신 희생양이 죽어 주었다"는 사실을 체득하게 만든다(레 16:21-22). 히브리서 13장 11-12절도 예수님께서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심을 강조하며,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고 선언한다. 장재형목사는 이것이 구약 의식의 완성이자, 참된 화목제물의 실현이라 설명한다. 우리는 예수님이 죄를 전가받아 희생당하셨음을 바라봄으로써 "죄를 속하는 일"과 "하나님과의 참된 화해"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게 된다.
이처럼 화목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과 나 사이의 막힌 담"이 무너졌고,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해졌다. 그런데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롬 5:10)이라 하며, 부활의 능력에 주목한다. 그리스도는 죽음에서 끝나지 않았고, 부활로 생명의 길을 열어 보이셨으며, 그렇기에 그리스도인도 단순히 '과거 죄가 사함받았다'는 차원에서 멈추지 않는다. 회개한 후에, 이제 새 생명 가운데서 복음의 진리를 따라 "그리스도의 살아있음"을 본받아야 한다. 장재형목사는 "죽음을 통해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주님은 부활로 우리에게 새 영적 탄생을 허락하신다"고 말하며, 참된 회심의 표지는 "죽음(회개)-새 생명(부활)"의 연결고리를 실제 삶에서 경험하는 것이라 가르친다.
로마서 6장 이후 바울의 주제 역시 이 맥락에 이어진다. 예수를 믿는 자는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가야"(롬 6:11) 하며, 옛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이제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날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한다(갈 2:20).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나의 죽음과 부활이 되어, 실제 삶에서 '화목하게 된 자'의 증거를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장재형목사는 "보혈의 십자가가 나를 정결케 했음을 믿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사랑이 내 삶을 어떻게 새롭게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단순한 교리적 동의로 끝나는 신앙이 아니라, 열매가 맺히는 신앙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특히, 히브리서 13장 13절의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는 말씀을 자주 언급한다. 속죄의 희생양이 성문 밖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다. 그렇다면 그 희생을 목도한 우리도 마땅히 "영문 밖으로" 나아가야 한다. 곧, 자기 삶의 고난과 치욕을 회피하지 않고, 세상의 멸시와 조롱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길에 동참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교회에 갇혀 안주하기보다는, 세상 가운데서 장사치의 소굴로 전락한 '성전(내면 혹은 교회 공동체)'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다시 정화하고, 상처받은 이웃들을 돌보며, 복음을 전하는 실천적 순종이 뒤따라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화목된 자들의 삶"이다. 신앙은 고백적이고 이론적인 차원을 넘어, 실제 생활 속에서 확증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말씀하신 것은, 죄 용서만 받은 존재로 멈추지 말고, 죄와 사망의 세력 아래 놓인 이 세상을 향해 화목의 소식을 전하라는 요청이다(마 5:13-16). 장재형목사는 교회가 이러한 역할을 감당할 때, 비로소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일방적으로 베풀어진 은혜가 다시금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고 역설한다. 교회가 죄인들을 정죄만 하거나 자기 의를 세우는 종교적 형태에 머무르면, 결국 세상과 동떨어진 채 복음의 능력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러나 '화목의 제물'이신 예수를 믿고 그 십자가의 사랑을 몸으로 실천하려 할 때, 세상은 하나님의 자비를 구체적으로 발견하게 된다.
로마서 5장 9절에서 바울은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미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고, 더 나아가 진노와 심판의 날에도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미래적 확신을 가진다. 이는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긴장 속에서, 궁극적인 소망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보여준다. 장재형목사는 믿음과 소망을 강조하면서, "우리의 현주소는 아직 세상 안에 있어 비바람과 고난을 겪지만, 그럼에도 확고한 소망을 갖는 이유는 바로 그리스도의 살아계심 때문"이라고 말한다.
화목의 제물이 되신 예수님은 단지 과거의 희생으로 끝나지 않고, 부활하셔서 살아계시며,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을 통해 계속해서 교회를 세우시고 믿는 자들을 견인하신다. 이 영적 동행이 없다면, 화목이 자칫 형식적 선언에 그치고 말 것이다. 반면에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지고, 날마다 죄에서 돌이키며,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삶을 배울 수 있다. 장재형목사는 이것이 바로 "성화의 과정"이라며, 구원받은 자들이 왜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죄의 문제 앞에서 회개하며, 이웃 사랑과 섬김을 실천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안내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5장 11절,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이것이 복음이 가져다주는 결론이다. 장재형목사는 이 구절을 두고, 결국 화목의 종착점은 "하나님 안에서의 즐거움"이라고 표현한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담이 허물어지고, 이제 그 자녀된 우리가 "아바 아버지"를 부르며 친밀히 교제하게 된다면(롬 8:15), 그 관계 안에서 참된 기쁨과 자유를 맛본다. 더 이상 죄책과 정죄의식에 눌려 살 필요가 없으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되, 그 두려움은 벌주시는 심판자가 아니라 거룩하신 아버지에 대한 '존경 어린 경외심'으로 바뀌게 된다. 교회 생활 또한 마찬가지다. 화목의 은혜를 체득한 자들은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서도 더 많은 용서와 이해, 오래 참음과 따뜻한 돌봄을 실천하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는" 공동체의 지표다.
로마서 5장 6-11절이 우리에게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우리는 원수 되었을 때에, 죄인 되었을 때에 오직 그리스도의 죽음과 보혈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았고,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가장 크고 놀라운 사랑의 확증이다. 둘째, 그 화목의 제물 되신 예수님을 통해 '화목'이 이루어졌다면, 이제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더욱 풍성한 구원을 향해 나아가야 하며,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실천적 사랑을 통해 이 복음을 드러내야 한다. 장재형목사는, 이 두 가지가 함께 어우러져야만 온전한 복음의 능력이 교회와 세상에 나타난다고 가르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장재형목사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먼저, '죄인 됨'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완전히 구원받은 존재"가 되었음을 믿음으로 고백해야 한다. 둘째, 그리스도의 죽으심에만 머물지 않고, 살아나심으로 우리에게 열어주신 새 생명의 길을 붙들어야 한다. 셋째, 화목의 제물이 되신 예수님을 본받아, 나 또한 이웃과 화목하기 위해 나 자신을 비우고 낮추는 태도를 실천해야 한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화목되었은즉"이라는 복음적 사실이 교회의 삶과 사회 속에서 빛을 발하게 된다.
나아가 장재형목사는 이 메시지를 교회 공동체와 현대 문명 전체에 적용해 보라고 도전한다. 불신과 분열, 무신론과 물질주의가 만연한 세상 한가운데서, 교회는 과연 얼마나 '원수 되었다가 화목된 자들'의 공동체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우리는 말로만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실제로 그 희생의 정신, 성문 밖으로 나아가셨던 주님의 낮아지심을 얼마나 추구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십자가 복음이 화석화되어, 단순히 교리적으로만 익숙해진 상태에 머물러 있다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능력, 그리고 화목의 은혜가 교회 안에서 생명력 있게 작동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나아감으로써, 그리스도의 사랑을 현장에서 증거해야 한다. 죄인인 이웃을 정죄하기 전에,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나를 사랑하신 주님"을 기억하며 용서와 화해를 실제로 베풀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로마서 5장 6-11절에 나타난 복음의 폭과 깊이는 한편으로 매우 단순하고 분명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삶 전체를 혁신하는 엄청난 소식을 품고 있다. "원수 되었을 때" "죄인 되었을 때"라는 표현으로 압축된 인간의 비참한 상태, 그리고 그럼에도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이것이야말로 복음이 가진 기적이고, 그 기적이 화목의 결과로서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는 자유"를 열어 놓는다. 장재형목사는 이 말씀이야말로 교회가 계속해서 살아가고 전파해야 할 메시지의 심장부라고 거듭 강조한다.
장재형목사가 로마서 5장 6-11절 강해에서 보여주는 핵심은, 죄로 가득 찬 세상과 원수 된 인간에게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명의 길이 열렸다는 사실이다. 그 길은 단순히 형벌을 면하는 수준이 아니라, 하나님과 화목해지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온전한 구원의 기쁨을 만끽하는 길이다. 교회와 성도는 이 놀라운 사랑을 계속 묵상하며, 각자의 삶과 사역 속에서 '화목의 대사'로 부름받았음을 자각해야만 한다(고후 5:20). 그리스도께서 이미 보여주신 희생과 헌신에 힘입어, 개인의 욕망과 교만을 내려놓고 이웃을 섬기는 길로 나아갈 때, 세상은 그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실체를 보게 된다.
따라서 로마서 5장 6-11절의 메시지는 결코 과거 역사에서 끝난 일이 아니다. 오늘도 우리가 사는 사회 곳곳에서 죄와 불신, 갈등과 분열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여전히 '원수 된 자들'은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교회가 십자가 복음을 붙들고, 장재형목사가 말하듯 "끝없이 자기를 낮추시어 원수를 위해 죽으신 예수"를 본받으려 애쓴다면, 그 원수 됨의 현실을 화목의 현실로 바꾸는 초자연적 능력이 곳곳에서 드러날 수 있다. 교회의 사역이란 바로 이런 방식으로, 십자가와 부활을 동시에 선포하고, 그것을 자신들의 공동체 안에서 실제로 실천해 보임으로써, 세상을 향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자기 아들을 내어주셨다'는 복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 날마다 부딪치는 현실 문제, 관계의 갈등, 사회적 모순 등에 대해 "원수 되었을 때에 사랑을 베푸셨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접근할 때, 우리는 화평케 하는 자로서(마 5:9) 세상 속에서 살 수 있게 된다. 그 길이 험난하고 불편해 보여도, 예수님의 피와 부활, 그리고 성령의 동행이 우리를 끝까지 붙들어 주신다. 이것이 참된 기독교 신앙의 능력이다. 장재형목사는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나타난 십자가 사랑을 끝없이 묵상하며, 그러한 사랑이 개인의 심령뿐 아니라 교회와 사회 전반을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지 숙고하자고 당부한다.
로마서 5장 6-11절이 선언하는 복음은 한 마디로 '원수 된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며, 그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구체적으로 실현되었다. 이 사랑이 우리 안에서 화목과 평안을 일으키고, 또 우리가 다른 이들과 화목을 이루는 삶으로 확장되어 간다.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롬 5:11)는 말씀은, 모든 믿는 자에게 주어진 궁극적 기쁨과 자유를 선포한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는 믿음으로 그 은혜를 받아 누리고, 동시에 세상 속에서 그 화목의 복음을 실천해야 한다. 장재형목사가 오랜 사역을 통해 누누이 강조하듯이, 진정한 구원 경험이란 교회 안에서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교회 밖 삶의 현장에서도 "원수 됨을 넘어 화목을 이뤄내는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는 단지 도덕적 실천이 아니라, 이미 십자가에서 확증된 사랑을 따라 행하는, '새 생명의 자연스러운 열매'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두 소주제로 정리해보면, 첫째는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확증된 하나님의 사랑"이고, 둘째는 "화목의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삶의 변화"다. 두 영역은 분리될 수 없으며, 함께 어우러져서 복음의 전모를 보여준다. 원수에서 자녀로 바뀌었다는 사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자가 예수의 부활 생명으로 오늘을 살아가면서 화목을 실천하고, 세상에 빛과 소금으로 영향력을 끼친다는 사실이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우리의 신앙고백도 그렇고, 교회의 정체성도 그렇다. 날마다 십자가의 희생과 부활의 능력을 깊이 묵상하면서, 교회 공동체 안팎에 넘치는 분열과 미움 대신 화목과 섬김의 열매를 맺기 위해 결단하는 것, 그것이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하는 "진정한 복음 생활"이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주님이 우리에게 부여하신 화목 사역의 구체적 실현"이라고 설명하며, 이 말씀을 따라 성도들이 배움과 실천을 멈추지 말아야 함을 거듭 촉구한다.
결국, 우리가 로마서 5장 6-11절의 진리를 붙들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기 아들을 죽이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셨다'는 사실이 단지 교리나 지식이 아닌, 실제로 삶을 뒤바꾸는 생명력이 됨을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체험은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예배와 섬김, 형제자매 간의 사랑으로 확산되고, 더 나아가 세상 한가운데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향기가 되어 퍼져나가게 된다. 이것이 바울이 말한 화목의 메시지요, 장재형목사가 로마서 강해에서 누차 강조하는 복음의 능력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확증된 하나님의 사랑은, 오늘도 여전히 원수 된 현실 가운데 스며들어, 사람들을 화해와 평화의 길로 부르고 계신다.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이들이 늘어날 때, 교회는 참된 구원의 공동체로서 빛을 발하게 되며, 바로 이것이 우리가 로마서 5장을 배우는 궁극적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