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명기 1장과 믿음으로 걷는 여정
신명기 1장에는 모세가 마지막 순간까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고자 했던 핵심 메시지가 잘 담겨 있다.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할지니라."(신1:8)라는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졌던 하나님의 분명한 지시이자 약속이다. 이것은 단순한 소유가 아니라 믿음으로 취해야 하는 땅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우리가 흔히 전쟁이나 무력으로 점령한다는 개념을 떠올리지만, 성경에서 계속 강조하는 핵심은 '하나님의 지시를 따른 순종'과 '믿음'이다. 장재형(장다윗)목사는 이 말씀을 해석함에 있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걸어가는 순례자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곧, "주님이 주신 땅은 주님이 주시는 방식대로 취해야 한다"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사람의 힘이나 불신이 섞일 여지 없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명기는 크게 세 편의 설교로 구성된다고 알려져 있으며, 모세의 고별 설교라고도 불린다. 신명기 1장은 그 서두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지금까지 겪었던 역사를 돌아보면서, 그들이 왜 광야에서 40년을 지내야만 했는지, 그리고 본래 11일이면 도달할 수 있었던 길을 왜 그렇게 오랫동안 돌고 돌아왔는지 보여 준다. 신1:2에 "호렙 산에서 세일 산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까지 열 하룻길이었더라"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지형적으로 11일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이스라엘 백성은 불신과 원망으로 인하여 40년을 허비했다. 이는 인간의 연약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저버린 결과이다.
민수기 13장과 14장은 가나안 땅을 정탐한 12명의 지도자가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세세히 전한다. 각 지파에서 한 명씩 대표가 선정되어 땅을 살폈는데, 그 중 10명은 의기소침한 보고를 가져왔고, 두 명, 곧 여호수아(호세아)와 갈렙만이 믿음의 보고를 하였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것이 여호수아와 갈렙의 확신이었다. 반면, 10명은 가나안 땅의 거주민을 '안학 자손'으로 지칭하며 스스로 메뚜기와 같다고 여겼다. 그 보고로 인해 온 백성은 두려움에 빠져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한다. 이미 출애굽기를 통해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체결했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 너희는 나의 백성"이라는 엄중한 약속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믿음보다 두려움을 택했다.
장재형목사는 이 대목에서 '지도자의 책임'을 유독 강조한다. 열두 명의 대표는 모두 지도자였고, 그들의 말 한마디가 백성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다. 가나안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우리가 저들과 싸워서 어찌 이기겠는가,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자, 왜 우리를 이곳에 데려와 죽게 하느냐"고 울부짖었다. 그 결과로 민수기 14장 29절, 32절에 기록된 대로, 20세 이상 된 사람은 광야에서 다 죽고, 그 후손만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저주가 아니라, 이미 분명히 세워진 언약과 약속을 어겼을 때 나타나는 심판이었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으면 죽으리라는 말씀을 어긴 인류의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기도 하다.
성경에서 강조되는 '하루를 1년으로 치신다'는 개념은 특히 민수기 14장 34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도자들이 40일을 정탐하면서 하나님께 불신을 드러내었고, 그 대가로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하게 되었다. 이는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무척이나 중요한 '수' 개념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무계획적으로 역사를 운영하지 않으시며, 시간이든 공간이든 분명한 계획과 목적하에 이끌어 가신다. 그렇기에 불신으로 시간을 낭비하면, 그 낭비가 몇 배 혹은 몇백 배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이때 지도자가 깨어 있지 않으면, 온 백성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입는다. 장재형목사는 이 사실을 통해 교회나 공동체를 섬기는 리더들이 "믿음의 태만"을 범하지 않도록 늘 깨어 기도하고, 말씀을 바탕으로 한 확신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400년, 혹은 430년 종살이가 애굽에서 있었다. 그 이전에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통해 이미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이 주어졌으나, 아브라함 역시 부분적인 실수와 불신, 혹은 완전하지 못한 순종으로 인해 후손들이 400년간의 긴 시간을 객이 되어 살아가야 했다.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은 짐승을 반으로 쪼개어 놓고 기다렸으며, 하나님께서 '타는 횃불'의 모습으로 그 사이를 지나가심으로써 언약을 체결하셨다. 그러나 그 언약을 깨뜨리면 쪼개진 짐승처럼 죽으리라는 경고가 함께 있었다. 결국, 아브라함의 언약에도 불순종과 인간적 실수가 스며들었고, 역사가 길어지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맞게 되었다.
이 모든 흐름을 되짚어 보면, 구원은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지만, 인간의 순종이 없이 그 은혜를 누릴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열 하룻길이면 충분했던 거리를 40년이라는 광야 생활로 뒤바꾼 것은 '불신'이었다. 신명기 1장에는 모세가 이 사실을 상기시키며, "너희는 이미 약속받은 땅을 믿음으로 들어갔어야 했다. 곧 들어갈 수 있었는데 원망과 불신으로 인해 기회가 날아갔다"고 탄식한다. 이는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시대의 성도들에게 주어진 공통된 경고이자 교훈이다. 왜냐하면 신자 또한 특정한 목표나 비전을 둘 때, 스스로 두려움에 사로잡혀 원망을 하거나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장재형목사는 이 장면에서 '거인의 땅'을 두려워하던 사람들과 '저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외치던 여호수아와 갈렙의 차이를 깊이 묵상하도록 이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사실,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라는 확신이 있다면 어떠한 난관도 거뜬히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훗날 가나안에 실제로 입성할 수 있었다. 다른 10지파 지도자들은 불신 속에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했고, 백성들 역시 지도자들의 그릇된 보고에 휩쓸려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황당무계한 말을 쏟아냈다가 결국 모두 광야에서 엎드러지고 말았다.
이런 역사는 종교성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두려움과 떨림(Fear & Trembling)'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여기서 말하는 두려움과 떨림은 인간이 자기 죄와 연약함을 직면할 때 갖게 되는 경외심과 상응하는 태도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있을 때, 불순종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질서를 무너뜨릴 때, 결과는 불가피한 심판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이 여기에 녹아 있다. 동시에, 하나님께 돌아서고 믿음 안에 서 있을 때, 그는 바다도 가르시고 태양도 멈추게 하시며, 해시계를 뒤로 물러가게도 하시는 전능자이심을 성경은 곳곳에서 선포한다.
특히 히스기야가 눈물로 기도하였을 때 생명의 연장을 받았던 사건(열왕기하 20장)이나, 다윗이 골리앗 앞에서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함으로 승리를 얻었던 사건(사무엘상 17장)은 동일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작은 목동이 거인 골리앗과 싸워 승리한 것은 다윗의 힘이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명기 1장에서도 "하나님이 이미 다 계획하셨고, 그 땅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시기로 약속하셨다면 그 약속을 믿고 들어가라"는 명령이 나온다. 그런데 정탐을 다녀온 지도자들은 그 약속을 망각하고 말았다.
오늘날 교회나 다양한 사역의 현장에서 지도자들이 지향해야 할 태도를 생각해볼 때, 이 민수기 13장, 14장의 이야기는 깊은 통찰을 준다. 지도자가 하루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면 공동체는 1년, 혹은 10년, 40년의 시간을 잃어버릴 수 있다. 심지어 광야에서 모두 쓰러질 수도 있다. 장재형목사는 이러한 본문을 깊이 설교하며, 무엇보다도 지도자들은 늘 깨어 기도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역설한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가 헤아리기 힘든 수준으로 정교하고 치밀하게 진행되며, 그 안에서 한순간의 불신과 게으름이 엄청난 손실과 불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신명기 1장 15절에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조직적으로 공동체가 운영되어야 함을 시사하며, 각각의 지도자에게는 하나님이 부여하신 분량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누군가는 1000명을 감당할 넓은 지경을 받고, 누군가는 50명, 또 어떤 이에게는 10명이 맡겨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부름받은 자가 자기 분량의 책임을 다하며, 거기서 흔들림 없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백성을 이끄는 일이다. 그러나 만약 백부장이나 천부장이 믿음없이 "우리는 가나안의 대적을 감당할 수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면, 그가 맡은 백성이 죄다 불신에 무너지고 광야에서 방황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오늘의 교회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불신과 게으름이 스며든다면, 아무리 제도와 조직이 잘 갖춰져 있어도 빈 그물을 건지기 일쑤라는 것이다.
특히 장재형목사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불신을 통한 퇴보'와 '믿음을 통한 전진'이라는 두 축으로 나누어 해석하기를 자주 권면한다. '사람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전능'이라는 두 극이 만나 충돌할 때, 사람이 자기 경험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제한하지 않고 오히려 믿음으로 나아갈 때 진정한 승리를 얻는 법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신명기 1장을 통해 모세가 "왜 우리가 이렇게 오래 걸려 여기까지 와야만 했는가"를 백성에게 상기시킬 때, 그 핵심 이유는 "원망과 불신"이었다. 사람은 작은 도전에 금세 좌절하고 무너지기 쉽지만,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기회를 주신다는 사실이 동시에 드러난다.
모세는 신명기 1장만 해도 백성에게 "이제라도 믿음으로 들어가라"고 촉구하지만, 실제로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또 다른 불순종이 반복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시고, 지도자를 세워 말씀을 전하고, 백성에게 회개와 순종의 기회를 주신다. 이처럼 하나님의 인도하심 안에서 우리는 언제든지 "뒤집을 수 있는 기회"를 받게 된다. 바로 그 기회에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며 나아갈 때, 오래 지체되었던 시간이 단숨에 회복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역사에서 400년 종살이 후 출애굽 사건이 일어났고, 또 40년 광야 생활 뒤에 가나안 입성이 실제로 성취된 것처럼 말이다.
장재형목사는 늘 이러한 구약의 사건들을 통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신자들은 제각기 인생을 살아가면서, 광야의 시간과 가나안으로 들어가야 할 시점을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늘 "내가 너희에게 줄 땅이 있으니, 들어가서 차지하라"고 말씀하시며, 그 땅은 결코 인간적인 싸움으로만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취하는 것"임을 강조하신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 백성이 받은 약속은 형식적이고 추상적인 언약이 아니라, 실제로 밟고 살아갈 수 있는 회복과 구원의 땅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땅에 들어가는 과정을 방해하는 최대의 적은 외부의 강한 군대가 아니라, 내면에 자리 잡은 두려움과 원망, 그리고 불신이다. 그 불신은 지도자에게서 시작해서, 백성 전체를 오염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신명기는 반복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기억하라'고 가르친다. "기억하라, 잊지 말라"가 주된 키워드이다. 과거에 우리가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때 어떻게 구출되었는지,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어떻게 양식을 공급받았는지, 그리고 목이 말랐을 때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기적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잊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미 베푸신 은혜를 잊으면, 우리는 쉽게 불평과 불신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2. 지도자의 책임과 하나님의 역사
신명기 1장에는 지도자를 세우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등장한다. "내가 너희의 지파별로 지혜와 인정이 있는 자들을 택하여 너희의 우두머리를 삼았노라"(신1:15 참조)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여기서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이란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당시 이스라엘 공동체를 단계적으로 이끌 수 있는 구조를 가리킨다. 이 구조 안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은 자들은 모두 '지도자'로 간주되었고, 그들의 중요한 임무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고, 백성을 공의롭게 다스리며,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민수기 13, 14장의 사건은 이 지도자들의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극명히 보여 준다. 열두 명의 대표가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왔는데, 모두 같은 땅을 보고 같은 경험을 했음에도 정반대의 결론이 내려졌다. 열 명은 "그 땅 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우리는 메뚜기와 같다"고 두려움을 토로했고, 두 명(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두려워하지 말자"고 선포했다. "같은 상황을 보고도 어째서 이렇게 다른 해석이 가능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믿음'이다. 장재형목사는 "영적 지도자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미래를 믿음으로 내다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의 계산만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해 보이는 길도,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가능해지는 길'이 된다. 그리고 그 여정을 사실상 주도하는 이들은 지도자이므로, 지도자의 믿음과 태도가 곧 백성 전체의 운명을 결정짓는 셈이다.
민수기 14장에서 20세 이상이 모두 광야에서 죽게 되었다는 선언이 내려진 뒤, 결과적으로 40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스라엘은 광야를 전전했다. 11일이면 갈 수 있는 길을 40년이나 헤맨 까닭은 단순히 물리적 문제가 아니라, 전적인 불신과 원망의 결과였다. 그 40년은 단지 시간을 흘려보낸 공백기가 아니라, 불신에서 비롯된 죄악을 광야에서 '소멸'시키는 시기이기도 했다. 하나님은 불평 속에서 광야로 도망치려는 자들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 시간 동안 만나와 메추라기를 통해 계속 먹이시고, 옷과 신발이 해어지지 않도록 하셨다. 동시에 그들은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의 인도를 받았다. 이런 측면에서 광야 40년은 '심판'이자 '훈련'이고, '죽음'이자 '새로운 세대의 탄생'이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역사는 복합적인 의미를 지니는데, 지도자들이 이를 이해하고 백성을 올바른 길로 유도하는 것이 그들의 몫이다.
장재형목사는 오늘날 교회의 사역자나 목회자, 소그룹 리더 등 다양한 위치의 지도자들에게 이 사실을 상기시키며, "단 하루의 선택이 백성에게 1년, 혹은 10년, 40년의 후폭풍을 미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작은 실수까지도 다 불사르시는 분이 아니라, 수많은 기회를 주시는 자비로운 분이시다. 하지만 지도자가 허무맹랑한 불신을 계속해서 퍼뜨리고, 그로 인해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의 약속을 거절한다면, 그 이후의 방향은 하나님이 아닌 지도자가 책임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 "우리가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이라고 외치자, 하나님은 "너희 말대로 될 것"이라 하시며(민14:28), 원망한 자들이 그대로 광야에서 엎드러져 죽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성경은 종종 "네 입에서 나오는 말에 주의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왜냐하면 말은 곧 마음의 표현이고, 마음은 곧 믿음을 드러내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언약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브라함은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과 피의 언약을 맺었다. 짐승을 쪼개고, 그 사이로 횃불이 지나감으로써 언약이 체결되었다. 이 언약은 "만약 이 약속을 어기면 쪼갠 짐승처럼 죽을 것이다"라는 무서운 경고를 동반한다. 에덴동산에서 "이 실과를 먹으면 정녕코 죽으리라"고 하신 말씀과 정확히 일맥상통한다. 즉, 하나님이 주시는 언약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은혜의 길이지만, 그것을 거부하거나 어길 때에는 그에 따른 심판이 따른다. 아브라함 때 이미 예고된 400년 종살이는 전세대의 불신과 약속을 온전히 붙들지 못한 대가로써 주어진 측면이 있다. 그리고 출애굽 뒤의 이스라엘도 가나안 목전에 두고 반복적으로 불신을 드러내며 40년이라는 광야 훈련을 받게 된다.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시대에도 수많은 영적 교훈이 존재한다. 삶이 어렵고, 앞이 막막해 보이거나, 외부의 장애물이 클 때, 우린 본능적으로 불평과 불신에 빠져들기 쉽다. "왜 이런 상황으로 몰아가시는가, 왜 우리를 죽이려 하시는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이 일관되게 말하는 것은 "내가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라는 언약 안에서 모든 문제의 해답을 찾으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주는 땅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셨고, '이미 준비된 땅'임을 여러 차례 강조하신다. 그렇다면 우리가 두려워하거나 원망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장재형목사는 이 대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으로 그 땅에 발을 내디디는 결정"이라고 가르친다.
민수기 13장 30절에서 갈렙은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라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는 힘이 세다' 혹은 '전략이 우월하다'는 논리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이 약속하셨으니 가능하다"는 믿음의 논리다. 비슷하게 다윗이 골리앗에게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고 외친 것과 일맥상통한다. 다윗이 던진 돌멩이는 전술적으로 볼 때 골리앗에게 위협이 되기 어렵지만,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기에 결과는 다윗의 승리였다. 지도자는 이 믿음의 스토리를 먼저 품고, 공동체가 그 이야기를 공유하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수나 실패가 있어도, 믿음으로 재출발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재확인시키며, 그 길을 따라가게 돕는 것이다.
장재형목사가 각종 설교와 세미나에서 강조하는 핵심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분명한 계획이 있으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기도와 말씀을 통해 그 계획에 접속하기를 힘쓰라는 것이다. 한 예로, 아브라함의 언약이나 히스기야 왕의 회개, 여호수아가 태양을 멈추게 한 사건 등은 모두 하나님이 이미 가지고 계신 크고 깊은 계획 안에서 구현된 일종의 '기적의 순간들'이었다. 그 순간에 사람들은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간구했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길을 열어주셨다. 이 흐름을 놓치지 않는 것이 믿음이고, 특별히 지도자는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 개입'을 신앙 공동체가 함께 체험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그래서 기도와 예배, 말씀 묵상을 통해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려는지에 늘 민감해야 한다.
지도자가 무지하거나 게으르거나 불신을 가르치면 어떻게 되는가? 민수기 13장에 등장하는 불신의 지도자들처럼, 그들은 공동체에 절망과 두려움을 전염시킨다. "저들은 강하다, 우린 못 이긴다,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자"라는 식의 사고방식은 광야의 삶을 끝없이 연장한다. 그 결과가 민수기 14장에서 나온 대로,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다"라는 준엄한 심판이었다. 이처럼 지도자가 전하는 말 한마디가 불신과 원망을 촉발하거나, 반대로 희망과 믿음을 키울 수도 있다. 그래서 성경은 지도자들에게 "새벽을 깨우고, 밤을 깨우고, 늘 깨어 기도하라"고 촉구한다. 신약시대에도 바울이 교회 지도자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하는 것을 보면, 기도의 중요성은 시대를 초월한다.
장재형목사는 또 다른 예로 교회 안에서 큰 건축이나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종종 "하나님이 하시면 된다는 믿음이 있으면, 그 믿음대로 열매가 맺힌다"는 testimonies를 나눈다. 어떤 일이든 사람의 계산대로만 하면 늘 부족하고 어렵게 느껴지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면 필요한 자원과 인력, 환경을 기적처럼 열어 주시곤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 교회 지도자들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는 히브리서 11장 1절을 명심하여,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신다"는 확신을 심어 주어야 한다. 단순히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말로 위로하는 차원을 넘어서, "실제로 전능하신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전심으로 설교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여기에는 균형이 필요하다. 무조건적인 낙관론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공동체에 어떤 계획과 비전을 주셨는지를 헤아리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장재형목사는 종종 "지도자는 귀 기울이는 자"라고 칭한다. 말씀과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때로는 경고도 받아들이고, 공동체 구성원들의 상황도 살피면서, 하나님의 때를 맞추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열심만으로는 실패할 수도 있고, 때로 하나님의 때가 이르지 않았는데 억지로 진행하면 스스로 지치고 포기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지도자는 늘 하나님 앞에 엎드려 시기와 방법, 그리고 그 계획을 구체적으로 묻는 영성을 가져야 한다.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지도자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기도하고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명기 1장 15절에 언급된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도 사실은 모세 혼자 임의로 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도하신 지혜 안에서 세워진 구조였다. 지파마다 대표를 세우고, 그들이 각 그룹을 돌보며 문제를 해결하고 백성을 재판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민수기 13장에서는 그 대표들이 불신에 빠져 '가나안에 못 들어간다'고 선언했으니, 결국 백성도 함께 믿음이 무너졌다. 지도자 한두 명이 깨어 있어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공유되는 믿음의 네트워크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두 명의 지도자가 불신을 퍼뜨리면 공동체가 쉽게 무너지는 것을 보면, 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나 막중한지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장재형목사는 여러 차례 설교와 강연에서 "지도자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 있기 위해서는 말씀을 연구하고, 기도에 힘쓰고, 예배와 공동체의 나눔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도자는 결코 모든 것을 혼자 할 수 없다. 오히려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저와 공동체를 사용해 주십시오"라는 자세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은 자신을 의지하는 자에게 지혜도 주시고, 문제 해결의 돌파구도 열어 주신다. 무엇보다 지도자가 한 번 세워졌다고 영원히 그 지위를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 역사나 이스라엘 역사를 돌아보면, 지도자가 그 자리에 합당치 않을 때 하나님이 다른 사람을 들어 쓰시기도 하며, 때로는 그 지도자를 폐하실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가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보여 주는 예들이다.
신명기 1장부터 이어지는 모세의 고별 설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초점을 맞추면서도 동시에 미래의 지도자들에게 주어진 경고와 격려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모세는 자신이 직접 광야에서 백성을 인도하며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들이 불신할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났는지를 너무도 잘 알았다. 그래서 신명기 전체를 통해, "너희가 반드시 이 율법을 지키고 기억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말라.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우상 숭배에 빠지지 말라. 자녀에게도 끊임없이 가르쳐라"라고 당부한다. 이 모든 당부에는 "믿음이 아니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땅에서조차 너희는 실패할 것"이라는 엄중한 진리가 깔려 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우상에게 무릎을 꿇거나, 세상의 힘과 재물을 의지한다면, 결국 다시금 40년, 혹은 그 이상의 광야를 맞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지는 도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마음으로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차원을 넘어, 실제 행동과 결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 삼는 삶을 말한다. 장재형목사는 "기도를 멈추지 않고, 말씀 묵상을 쉬지 않고, 예배를 생명처럼 여기며, 교회의 지체들이 서로 협력하여 섬기는 태도"야말로 진정한 믿음의 삶이라고 가르친다. 그것이 곧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고 외치던 갈렙과 여호수아의 길이기도 하다. 바꿔 말하면, 현실은 아무리 암담해 보여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가능하다는 믿음의 결단을 내리는 것이다.
신명기 1장 8절에 기록된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하라"는 명령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것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하나님의 지시하심과 약속이 있을 때, 믿음으로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미 준비된 기업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을 목회자나 지도자, 혹은 성도들에게 장재형목사는 계속해서 일깨운다.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할 사실은, 지도자의 믿음이 공동체 전체에 크나큰 영향력을 미친다는 점이다. 지도자 한 사람의 믿음이 순수하고 견고하다면, 때로는 불신으로 흔들리는 백성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도 있다. 반면 지도자가 불신에 사로잡혀 입으로 그것을 전파한다면, 백성 또한 쉽게 낙담하고 절망하게 된다.
우리는 신명기 1장과 민수기 13, 14장을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계획적으로 역사를 이끄시는지, 그리고 그 계획 앞에서 지도자가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를 배운다. 40년이라는 광야의 의미는 단순한 낭비만이 아니라, 불신을 소멸시키고 새로운 세대를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이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도 불신의 광야를 돌지 않으려면, 하루하루를 믿음으로 채워야 한다. 그리고 지도자들은 깨어 기도하며,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온전히 선포해야 한다. "하루를 잃으면 백성이 1년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하며, 맡은 양 떼를 이끄는 것이다. 그리하여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할지니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로 실현되고, 약속을 이룬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장재형목사의 가르침이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 각 사람에게 기회를 주시며, 믿음으로 그 기회를 붙들면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