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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형목사 -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 디모데후서 4장 9-13절에 대한 해설과 목회서신의 구조]

디모데후서 4장 9-13절은 사도 바울이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남긴 개인적인 부탁이면서도,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전해지는 중요한 유언과도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디모데전서와 디모데후서, 디도서는 흔히 목회서신이라고 불린다. 장재형 목사는 이 세 개의 서신서를 통해 성경이 지도자들을 어떻게 세워 가는지, 그리고 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분명하게 배울 수 있다고 강조한다. 어떤 전승과 신학적 배경에서든, 이 목회서신은 바울이 목회자와 지도자들에게 남긴 매우 실제적이며 실제 사역 현장에서 큰 지침이 되어주는 교훈들을 제공한다. 디모데후서는 특히 바울이 자신의 생애가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직감하고 쓴 글로서, 한편으로는 애절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교회와 복음을 지키는 강인한 태도를 보여준다. 장재형 목사가 설파하곤 했듯이, 바울은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이며, 어떻게 지켜져야 하는지를 누구보다 분명하게 알고 있었고, 이를 자신의 삶으로 증거한 위대한 사도였다.

바울은 먼저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딤후 4:9)고 당부한다. 여기서 드러나는 바울의 마음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음을 보여준다. 디모데가 속히 와야 한다고 하는 것은, 바울의 주변 사역자들이 흩어졌거나 혹은 도망가거나, 다른 지역의 사역을 위해 파송되어 거의 혼자 남아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바울이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다"(딤후 4:10)고 말하는 대목은, 당시 선교지와 교회가 놓여 있던 복합적이고 도전적인 상황을 드러낸다. 데마는 함께 바울을 섬기던 동역자였으나, 결국 세상을 더 사랑하여 바울의 곁을 떠났다고 한다. 장재형 목사는 이 구절을 해석하면서, 복음 사역을 하다 보면 언제나 세상의 유혹, 물질적 안일, 안전과 안정을 쫓는 사람들로 인해 생기는 이탈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지적했다. 실제로 바울도 그 쓰라린 경험을 고스란히 체감했다는 것이다. 그레스게와 디도 역시 다른 지역으로 사역을 위해 파송되었다. 결과적으로 바울은 감옥이라는 물리적 고립과 더불어, 함께 있던 동역자들이 없거나 멀리 떠나버린 상황에 놓인다. 바울은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딤후 4:11)라고 말할 정도였는데, 이는 친밀했던 동역자들이 사역 혹은 다른 이유로 바울을 곁에서 돌볼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바울은 여전히 복음을 위하여 필요한 인재를 바라보고 있다. 그는 디모데에게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 4:11)고 말한다. 본래 마가는 바울의 1차 선교여행 도중 바울 일행을 떠났던 적이 있었다. 사도행전 13장 13절에 언급된 그 사건은, 마가가 당시 사역 환경의 어려움이나 두려움 때문에 끝까지 동행하지 않고 중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던 것이라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그 후 바울과 바나바가 2차 선교여행을 계획할 때, 바나바가 마가를 다시 데려가고자 했으나 바울은 반대했고, 이로 인해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해 소아시아 쪽으로 떠났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마가는 베드로의 통역자로 섬기고 복음의 사역에 있어서 유익한 일꾼으로 성장했다. 이제 바울은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명확하게 부탁함으로써, 과거 실수와 이탈을 경험했던 마가를 다시 품고 복음사역자로써 귀히 쓰임 받도록 하고 있다. 장재형 목사는 이 점에 특히 주목한다.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과정에서 한 번 실패하거나 물러서거나 실망을 주었던 사람이 있어도, 하나님 안에서 충분히 다시 세워지고 더 크게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교회 공동체와 사도적 리더십이 보여주는 '용납의 원리'이기도 하다. 바울은 눈앞의 어려움과 이별 속에서도, 겨울에 디모데와 마가가 와서 함께 복음의 마지막 수확을 거둘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러므로 "디모데야, 너는 속히 오고, 마가도 함께 오라. 그가 내 일에 유익하단다"라는 바울의 말 속에는 위대한 사도의 따뜻한 마음과 수용이 담겨 있다.

나아가 바울은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딤후 4:12-13)고 덧붙인다. 여기서 보여지는 바울의 실제적 부탁은 매우 인간적이다. 바울은 춥고 열악한 감옥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겨울을 날 겉옷이 필요했다. 또한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고 한 것은, 바울이 여전히 깊은 공부와 묵상을 멈추지 않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많은 신학자는 그 가죽 두루마리가 구약 성경 사본이거나 초대교회 때 공유되던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기록일 수 있다고 해석한다. 중요한 것은, 바울에게 있어 결박과 고통스러운 환경은 말씀이 주는 위로와 진리를 추구하는 작업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장재형 목사는 이 대목을 설교할 때, "감옥에서도 말씀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은 바울의 태도야말로, 진정한 신앙 지도자의 표상"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무슨 상황이든 간에 성경과 하나님 말씀 연구를 놓지 않는 자만이 변함없이 복음의 길을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처럼 초대교회의 대표적 지도자로서, 교회를 섬기는 지도자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며, 어떤 마음가짐으로 자신과 교회를 지켜야 하는지를 목회서신 전체를 통해 강조한다.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는 그래서 오늘날도 목회자나 선교사, 교회 내 리더들이 반드시 숙지해야 할 사도적 지혜의 원천이다. 디모데전서에서는 감독과 집사의 자격요건, 교회 내에서의 예배나 가르침 등에 대해 매우 구체적으로 지침을 내린다. 디도서에서는 그레데섬으로 파송한 디도에게, 거친 문화 속에서도 어떻게 바른 가르침을 전수하고 교회를 세울 것인지를 충고한다. 디모데후서는 바울 생애의 마지막 편지이자 유언장처럼 읽히므로, 더욱 절절하게 복음 수호와 교회 지도자의 자세를 나타낸다. 특히 장재형 목사는 이 유언장이 주는 영적 무게에 늘 주목해 왔다. 왜냐하면 목회자는 자신의 생을 다한 시점에서도 여전히 교회를 바라보고, 성도를 사랑하고, 후배들을 세우며, 모든 것이 결박당했음에도 복음만큼은 결박될 수 없다는 확신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목회서신은 또한, 신약의 전체적 구성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장재형 목사는 신약을 구약에 비유할 때, 모세오경과 같은 위치에 복음서가 있고, 역사서에 해당하는 것이 사도행전, 그리고 지혜서에 해당하는 것이 서신서들(로마서부터 유다서까지), 그리고 예언서에 해당하는 책이 요한계시록이라고 설명한다. 그중에서도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는, 교회 안에서의 구체적인 질서와 영적 권면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기에 교회 지도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나침반 역할을 해 준다. 바울은 인생 막바지에, 그리고 세워둔 교회들이 여러 위협과 혼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그가 세운 제자들이 건강한 교회를 유지해 나가길 간절히 원했다. 그것이 곧 하나님 나라를 지키고 확장하는 길이었고,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이심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했다. 때문에 디모데후서 마지막 부분에서 "너는 어서 속히 오라"는 부름을 통해, 바울은 외로운 감옥에서조차 혼자 신앙을 지키려 하지 않고 여전히 사랑하는 동역자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함께 말씀을 연구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완주하는 공동체적 실천을 끝까지 추구했다. 장재형 목사는 이것이 교회의 본질이며, 지도자가 가져야 할 중요한 영적 마음가짐이라고 자주 역설한다.

장재형 목사가 늘 강조하는 "사도 바울이 말년에 보여준 모습"은, 그가 겪은 온갖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복음의 길로 갔다는 점이다. 지도자는 높은 영적 이상만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제 삶의 고난 속에서도 끝까지 자신이 선포한 복음을 스스로 지켜 내야 한다. 디모데후서 4장 9-13절은 이런 바울의 정신이 맨 마지막까지 이어졌음을 잘 보여준다. 다른 이들은 사역지로 파송되었거나 혹은 세상으로 떠났지만, 바울은 누구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디모데와 마가, 누가 등을 불러모아 그리스도의 남은 일을 함께 감당하자고 초대했다. 옷이 필요할 정도로 혹독한 감옥 환경에서도, 말씀을 연구하기 위한 책과 가죽종이를 챙겨 달라고 요청한 것은, 그의 영적 열정이 식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따라서 이 본문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삶이 힘들 때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하는지를 잘 가르쳐 준다. 핍박과 가난이 있다 해서 말씀을 포기하거나 동역자들과의 협력을 단절해서는 안 된다. 바울의 모범을 따라, 마지막까지 깨어 기도하며 교회 공동체를 세워 가는 태도가 중요하다. 이 점이 바로 장재형 목사가 오랫동안 설교와 저서를 통해 강조해 온 핵심 메시지 중 하나이기도 하다.

디모데후서 4장 9-13절의 맥락을 이해할 때, 우리는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 전체를 함께 봐야 한다. 그 이유는 이것이 모두 동일한 맥락 속에서, 바울이 남긴 교회 운영 지침과 지도자들을 향한 권면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역사적 맥락이나 문화적 배경이 달라졌어도, 목회서신이 전달하는 원리는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리와 복음의 능력이 변화무쌍한 세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존속되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목회자와 교회 지도자들은 그 진리를 수호하고 계승해야 한다는 점이다. 바울이 감옥에서 쓴 디모데후서는 역사적으로도, 신학적으로도, 그리고 영적으로도 크나큰 함의를 가진다. 실제적으로 바울은 이 편지가 쓰인 직후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사실상 이 편지는 그의 마지막 말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장재형 목사는 "마지막 때의 말"이란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그것은 단지 개인의 유언이 아니라, 하나님이 교회를 향해 주시는 종합적 결론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제자들을 선교지에 파송하며 독수리가 새끼를 강하게 키우듯, 언제나 전장에서 훈련받고 성장하도록 했다. 디모데는 에베소로, 디도는 그레데섬으로 보내어 각각 그곳의 공동체를 세워 나가게 했다.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은 늘 로마를 비롯해 헬라 지역, 소아시아 지역을 열심히 다니며 교회를 개척했고, 그 개척지마다 제자를 남겨두고 다시 떠나는 패턴을 반복했다. 이런 전도와 파송의 정신이 초대교회의 역동성을 만들어 냈고, 그 결실이 오늘날 전 세계 교회로 이어져 왔다. 교회사를 살펴보면, 파송된 자들 중에는 훌륭하게 교회를 세우고 많은 영혼을 구원한 자들도 있지만, 도중에 세상으로 돌아서거나 불협화음을 일으킨 사람도 존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공동체는 끊임없이 확장되었는데, 이는 바울처럼 하나님께 헌신한 지도자들이 말씀과 기도,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세워졌기 때문이다. 장재형 목사는 교회가 세워지고 확장되는 과정을 살필 때, 항상 이런 바울의 파송 정신과 목회서신에 담긴 지혜가 가장 중요한 뿌리가 된다고 강조한다.

디모데전서와 디도서가 보다 체계적인 교회 내 질서와 감독, 장로, 집사와 같은 직분에 대한 구체적 지침을 준다면, 디모데후서는 보다 개인적이고 정감 어린 어조로, 특히 바울의 삶 자체가 가진 모범을 강조한다. 예컨대 바울은 "너는 무엇보다도 읽고, 가르치고, 전하는 일에 전념하라"라고 디모데전서 4장 13절 등에서 밝힌다. 이는 오늘날에도 교회 지도자라면 반드시 명심해야 할 원칙이다. 교회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공동체라는 사실을 잊는 순간, 교회는 곧 세속적 활동단체나 친교모임으로 전락하기 쉽다. 바울은 교회 지도자들이 하나님 말씀에 전력을 다할 것을 분명히 말했다. 장재형 목사는 현대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갈등과 타락 현상 뒤에는, 결국 말씀에서 멀어지고 육적인 욕망과 물질주의가 판치도록 내버려 둔 리더십의 문제가 깔려 있다고 진단한다. 복음과 말씀은 언제나 교회의 심장이어야 하며, 지도자들이 그것을 붙들고 있을 때만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목회서신이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교리적 설명이 많아 보이는 로마서나 갈라디아서 등과는 달리 매우 실제적, 실천적 교훈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이다. 교회 내 질서, 감독과 집사의 자격, 교회 내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이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등등이 구체적으로 언급된다. 디모데가 젊었기 때문에 받았을 법한 여러 조언과 권면도 섞여 있다. 예컨대 "너는 누구에게도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라"는 식의 당부는, 오늘날 젊은 목회자들이나 리더들이 읽어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장재형 목사는 이런 구절을 인용하며, 교회 내 리더십은 나이와 상관없이 말씀과 기도, 인격적 성숙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영적 성숙이 부족하다면 참된 지도자가 되기 어렵고, 반대로 나이가 어리더라도 말씀과 기도로 무장되어 성령의 능력에 힘입으면 교회를 든든히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디모데전서와 디도서, 그리고 디모데후서까지 묶어 읽으면, 바울이 얼마나 세밀하고 실천적으로 초대교회의 기틀을 놓았는지 알 수 있다. 장재형 목사는 이를 "교회의 영적 골격"이라고 부른다. 교회가 아무리 건물이 크고 사람 수가 많아도, 이 영적 골격이 제대로 서 있지 않으면 언젠가는 문제가 드러나고, 갈등이 터지고, 심지어 분열로 이어진다. 반대로 눈에 보이는 규모가 작을지라도, 말씀 중심, 복음 중심, 예배 중심, 기도 중심으로 서 있으며, 사도적 권면이 살아 있는 공동체라면 반드시 건강하게 성장한다는 것이 장재형 목사의 가르침이다. 바울이 디모데후서에서 반복적으로 디모데에게 "복음과 말씀을 지켜라. 경건에 힘써라. 사람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히 증언하라. 어떤 고난이 온다 해도 낙심하지 말고 주님이 주신 능력으로 버텨라"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신약 교회가 가진 힘은, 세상의 재력이나 권세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과 진리의 말씀에 있다는 점을 오늘 본문과 목회서신 전체가 웅변하고 있다.

특히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떠났다"는 구절은, 교회 리더나 목회자의 길을 가면서 겪을 수 있는 가장 흔한 시험이 무엇인지 단적으로 보여 준다. 세상적 유혹, 즉 돈과 재물, 쾌락, 편안함, 안전 등은 언제나 복음 전파와 헌신을 방해하고, 고난이 닥치면 그 길을 포기하게 만든다. 바울은 이러한 데마의 이탈에 대해, 그를 저주하거나 증오하는 감정 표현을 하기보다는, 사실 그대로 "그는 세상을 더 사랑해버렸다"라고 기록했다. 여기에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우리는 바울이 데마를 향한 원망보다는 복음 사역에서 이탈한 자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장재형 목사는 이런 사실을 거론하면서, "영적 지도자는 사람의 실패와 이탈 앞에서 애통해할 줄 알고, 동시에 그런 상황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계속 가르치고 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탈한 사람을 무조건 배척하거나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어 회복할 수 있다면 마가처럼 다시금 복음 사역에 합류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이 마가를 다시 찾고 있고, 결국 마가가 유익한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잘 입증한다. 이것이 목회서신이 주는 커다란 영적 지혜이며, 장재형 목사가 오랜 기간 강조해 온 '회복'과 '재헌신'의 원리이기도 하다.

결국 디모데후서 4장 9-13절은, 사도 바울이 처한 현실적 고난과 영적 열망의 절묘한 조화를 보여주며, 초대교회가 어떻게 그 혹독한 시대 속에서 복음을 지켜 왔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오늘날 우리도,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닥치더라도, 말씀과 동역자들과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장재형 목사는 교회가 재정적으로 어렵고, 개인 사역이 힘들고, 때로는 역풍이 불어와도, 디모데후서의 정신으로 돌아가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역설한다. 바울이 감옥에서 쓴 이 편지는 교회사의 시발점에 해당하는 결정적 문서이자, 수많은 교회 지도자들에게 헌신을 재촉한 영적 메시지다. 이 메시지는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누군가는 세상으로 떠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돌아오고, 누군가는 끝까지 달려가며, 결국 복음과 말씀은 계속해서 전수되고 확장된다. 이 점이 디모데후서 본문과 목회서신이 보여 주는 가장 위대한 위로이자 약속이다.

2. 제자도와 리더십

장재형 목사는 디모데후서를 비롯한 목회서신 전체가 교회 지도자, 즉 리더십 훈련의 본질을 담고 있다고 본다. 교회 안에서 리더를 세우는 과정은, 곧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제자도를 실천하는 것이다. 제자도란 단순히 교회 프로그램을 수강하고 일정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따르고, 자신을 부인하며, 세상의 유혹과 혈연, 소유에 대한 집착을 초월하고, 오직 복음만을 최우선으로 삼는 삶의 자세를 의미한다. 실제로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제자도 가르침은 매우 급진적이고 과격하기까지 하다. 장재형 목사가 강조하는 세 가지 핵심 원리는 다음과 같다. 첫째,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라는 말씀은 소유로부터의 해방을 강조한다. 많은 이들이 맘몬의 신, 즉 물질에 사로잡혀 살아가면서, 돈이 없으면 절망하고, 돈이 있으면 기뻐하는 삶의 패턴을 갖는다. 그러나 제자가 되려면, 돈보다 더 큰 가치를 추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면 그 외 모든 것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예수님의 선언에 실제로 뿌리를 두는 삶이 중요하다. 세상적으로는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복음을 위해 기꺼이 물질적 희생도 감수하는 영적 결단이 있어야 한다.

둘째,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혈연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을 강조한다. 교회가 영적 가족 공동체라는 점을 믿고, 육적 가족이나 혈연에 대한 집착을 넘어서는 결단이 필요하다. 이는 가족을 버리라는 극단적인 주장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교회 공동체가 더 우선적 가치임을 인식하라는 뜻이다. 현대 교회에도 가족 문제가 민감하게 적용될 수 있는데, 간혹 믿지 않는 배우자나 부모, 친족을 이유로 교회 헌신을 미루거나 복음 사역에서 물러나는 경우가 있다. 장재형 목사는 "바로 그때가 제자도의 진수를 시험받는 시점"이라고 말한다. 물론 가족도 소중한 존재이지만, 궁극적으로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며, 영적으로 한 몸을 이룬 공동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한 가치관의 전환이었고, 초대교회의 뜨거운 사랑과 헌신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었다.

셋째,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는 말씀은 앞만 보고 나아가는 결단, 곧 임전무퇴(臨戰無退)의 정신을 보여준다. 일단 제자의 길에 들어선 이상, 세상의 유혹이나 두려움, 또는 과거의 미련 때문에 뒤로 물러서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다. 장재형 목사는, 초대교회가 엄청난 핍박에도 불구하고 로마 제국 전역으로 복음을 확장해 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전진만 있고 후퇴는 없는' 급진적 신앙 고백에 있다고 설명한다. 바울 역시 선교의 길에서 역경을 만날 때마다 도망가지 않고, 끝내 순교하기까지 복음을 지켰다. 오늘날 우리도 이 정신으로 훈련되고 무장되어야만, 세상이 아무리 악해지고 물질주의가 만연해져도 교회를 견고히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장재형 목사는 이처럼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제시하신 제자도 원리와, 디모데후서 등 목회서신에 나타나는 교회 리더십 원리가 정확히 일치한다고 말한다. 그 핵심은, 물질과 혈연을 초월하고 끝까지 전진하는 사람, 복음을 위해 자기 삶을 헌신하는 사람이 교회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고난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감옥에 갇혀서도 말씀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에베소, 그레데, 달마디아, 갈라디아 등 여러 곳에 제자들을 파송하며, 독수리가 새끼를 높은 곳에서 떨어뜨려 키우듯 훈련과 실천의 현장으로 몰아넣었다. 디모데와 디도가 그러했고, 누가는 바울과 함께 했으며, 마가는 한때 도망갔어도 결국 복음 사역자로 다시금 세워졌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장재형 목사는 "제자도와 파송의 위대한 주기"라고 부른다. 교회는 결코 한두 명의 지도자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새로운 일꾼들을 계속해서 발굴하고 성장시키고 또 파송함으로써 전 세계로 확장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초대교회 시대부터 현대 교회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성령의 역사이며, 목회서신에 녹아 있는 본질이다.

나아가 장재형 목사가 말하는 교회 성장 전략은 단순히 교인 수를 늘리는 '양적 팽창'이 아니라, 영적 제자화를 통한 '질적 확장'을 목표로 삼는다. 오늘날 교회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 중 하나는, 무작정 수적 부흥에만 혈안이 되어 복음의 본질과 제자도의 기초를 놓치는 것이다. 그러나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를 살펴보면, 바울은 결코 '수의 확대'를 먼저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교회가 "건강하고 경건하며, 성령의 능력과 말씀에 충만한 지도자들"에 의해 세워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감독과 집사의 자격을 말할 때도, 가정과 자녀를 어떻게 잘 다스리는지, 세상에서 흠 잡을 데 없는 품위를 유지하는지 등을 언급한다. 결국 신앙 인격과 리더십 품성, 즉 한 사람의 내면적 성숙과 믿음의 근본이 가장 우선임을 의미한다. 이런 질적 토대가 마련되면, 자연스레 그 교회는 열매를 맺고 주변을 밝히며 영혼을 구원하는 역동적 공동체가 된다. 장재형 목사는 "양은 질을 결코 대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교회가 먼저 올바른 기둥을 세우고, 제자도를 확고히 해야만 그 어떤 바람과 핍박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주변 사람들을 복음으로 끌어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초대교회는 유대교 권력층과 로마 제국의 이중 억압을 받았음에도, 3세기에서 4세기에 이르는 사이 폭발적으로 확장되었다. 학자들은 이를 기적에 비유하곤 한다. 보잘것없는 소수의 무리로 시작된 교회가 어떻게 거대한 제국을 뚫고 로마 전역, 그리고 그 너머 지역까지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는지는, 역사의 신비 중 하나다. 그러나 성경과 교회사적 맥락으로 보면,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라, 복음의 능력과 제자도의 영적 힘이 합쳐진 결과다. "가지고 있는 재물은 적어도 영혼의 열정은 가득한 사람들이 로마 제국 곳곳을 누볐다"는 것이, 장재형 목사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초대교회 지도자들의 모습이다. 그들이 품었던 복음의 비전과 제자도의 결단은, 교회가 세상의 상식을 뛰어넘어 굳건히 성장하도록 만들었다.

장재형 목사는 또 하나 중요한 점으로, 제자도를 통해 세워진 지도자들은 반드시 "영적 가족"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디모데후서에서 바울이 말하는 '디모데야, 속히 오너라. 마가를 데려 오라. 누가만 나와 함께 있다'라는 구절은, 지도자가 결국 혼자가 아니라 함께 가야 함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교회는 한 몸이며,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속한 지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지도자가 스스로 영웅이 되려 하거나, 개인적 야심을 추구하면서 공동체와 분리될 때, 교회는 그 영적 본질을 잃고 만다. 바울은 감옥이라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제자들을 그리워하고, 함께 교제하며 말씀을 나누고자 했다. 장재형 목사는 이 장면이야말로 교회 공동체의 아름다운 본을 보여 준다고 해석한다. 어떤 지도자가 권위와 명성을 얻었을 때, 사람들과 거리감을 두고 점점 군림하려 든다면, 그것은 이미 제자도의 원리를 잃어버린 상태다. 그러나 바울처럼 인생 최후의 순간까지도 동역자와 제자들을 불러 모으고, 필요한 의복과 책, 가죽 종이를 부탁하며 함께 겨울을 나려 했다는 사실은, 교회가 기본적으로 사랑과 헌신의 공동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켜 준다.

또한 장재형 목사는 '파송'과 '확장'을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교회가 생명력을 이어 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를 "C12 프로젝트"나 "G20 전도 전략" 등의 예로 들어 자주 언급해 왔다. 바울이 도시마다, 지역마다 교회를 세우고 제자를 남겨두고, 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복음을 전했던 것처럼, 교회는 오늘날 전도와 파송을 통해 계속해서 미개척지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가르친다. 터키 이스탄불이나 유럽, 아프리카, 남미 등 아직 복음이 완전히 뿌리를 내리지 못했거나, 교회가 미약한 지역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이들을 영적으로 지원하며, 성경 중심의 훈련과 제자화를 지속한다면, 교회는 또 한 번 폭발적인 부흥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전 세계의 문화와 언어, 경제적 격차가 엄청난 상황에서, 교회는 인종과 계층을 초월해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바울이 헬라인, 유대인, 로마인, 야만인, 스구디아인 등 모든 이에게 빚진 자의 심정으로 복음을 전했다면,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도 동일한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장재형 목사는 말한다. 이러한 전략은 결코 개인의 야망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명하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길이라는 해석이다.

물론 이런 파송 전략을 실천하려면, 디모데나 디도처럼 현지의 목회를 이끌 건강한 지도자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교회는 멤버십 훈련, 제자도 훈련, OLI(리더십 훈련) 등 단계적 교육 과정을 통해, 성도들을 지속적으로 성장시켜야 한다. 바울이 '읽고, 전하고,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라'고 디모데에게 권면했던 것처럼, 말씀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영적으로 깨어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 우선이다. 장재형 목사는 "어떤 비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 자체가 곧 비법이고 최고의 매뉴얼이다"라고 말한다. 교회사가 증명하듯, 성경 본문을 가장 충실히 읽고 해석하며, 삶에 적용하는 교회일수록 건강하고 지속적인 부흥을 이루어 왔다. 반면 인간적 지혜나 프로그램에 의존해 빠르게 수적 성장만을 추구한 교회들은, 언제나 문제와 타락이 뒤따르곤 했다. 그래서 목회서신이 주는 실제적 교훈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장재형 목사의 주장이다.

장재형 목사는 또한 '전진만 있고 후퇴는 없다'는 제자도의 원리는, 모든 교회 구성원이 힘써 지켜야 할 정신이라고 부연한다. 이를 위해 교회는 사랑과 용납의 문화를 세우고, 동시에 합당한 훈계와 교정의 과정을 마련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마가의 예가 이를 증명한다. 잠시 도망쳤던 마가를 바나바가 그 뒤에 데리고 갔고, 결국 그는 복음서까지 기록하는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교회 내에서 때로 누군가 실수하거나 나태해져서 물러간다 하더라도, 그에게 돌아올 통로를 열어 두고, 사랑과 진리로 양육하면, 놀랍게도 다시 유익한 일꾼으로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난다. 이런 회복이 가능하려면, 디모데후서에 나타난 것처럼, 지도자가 사랑으로 동역자들의 영적 성장을 도울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바울은 감옥에서도 자기 걱정보다는, 남겨진 교회들과 디모데, 마가를 비롯한 동역자들의 영적 상태를 염려했다. 이것이 참된 영적 리더십이며, 교회가 본받아야 할 태도다. 장재형 목사는 "목회자가 교인들로부터 무엇을 얻어내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목양 방식을 본받아 그들을 돌보고 세우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그럴 때 교회는 양적, 질적으로 같이 부흥할 수 있다.

결국 제자도와 리더십은 분리될 수 없으며, 교회의 성장과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을 알게 된다. 복음은 언제나 사람을 변화시키고, 변화된 사람들이 세상을 다시 변화시킨다. 이 체계를 한 번 맛본 사람은 결코 뒤로 물러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직접 목격했고, 성령의 임재를 강렬하게 체험했으며, 바울과 같은 지도자들의 가르침을 통해 복음이 가진 능력이 실제 삶에 어떻게 구현되는지 알았다. 이것이 한 세대, 두 세대를 지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확산되었다. 장재형 목사는 현대 교회도 이 원리를 되살려야 한다고 거듭 주장한다. "디모데후서와 디도서, 디모데전서에 담긴 목회서신의 정신"을 기반으로, 제자도의 급진성과 교회의 공동체성을 회복한다면, 지금의 시대가 아무리 혼란스럽고 물질만능주의가 지배하더라도, 교회는 오히려 훨씬 더 강력하게 세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장재형 목사는 언제나 이 모든 과정을 이끄시는 분은 성령이심을 강조한다. 성경은 인간의 손을 빌어 기록되었으나, 궁극적으로 성령의 감동과 인도를 통해 편찬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교회를 이끄시는 분도 성령이시며, 우리가 목회서신을 공부할 때 그 깊은 지혜에 접속할 수 있는 것도 성령의 역사 덕분이다. 디모데후서 4장 9-13절에서, 겉으로는 겨울의 추위와 감옥이라는 절망적 상황을 볼 수 있지만, 영적 실상은 바울이 성령의 강력한 임재 안에서 복음과 동역자들을 다시금 붙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초대교회가 탄생하고 전 세계로 확장되기까지 이어진 역사의 출발점이 되었다. 교회는 인간이 만들어 낸 제도가 아니라, 성령 안에서 거듭난 사람들의 모임이며, 그들 사이의 사랑과 헌신이 얽혀 있는 살아 있는 유기체다. 그러므로 성경의 교훈대로 계속해서 전진하고, 복음에 참여할 또 다른 디모데와 마가, 디도를 세워 나가는 길만이 교회의 미래라고 장재형 목사는 설명한다.

바울은 감옥에 있으면서 디모데가 꼭 자신에게 오기를 바랐고, 마가를 데려오라 당부했으며, 누가가 옆에서 섬겨주고, 두기고를 에베소로 보내는 등 끝까지 교회를 조직하고 세우는 일에 힘썼다. 그 이유는 교회가 확실히 사도적 전통 위에 서 있어야, 복음이 변질되지 않고 다음 세대들에게 전해지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확신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똑같이 요구된다. 온갖 세속화의 물결과 이단 사상이 교회를 공격할지라도, 목회서신이 밝혀 준 원칙과 제자도의 정신, 그리고 성령의 능력을 붙든다면, 교회는 어느 시대에나 굳건히 세워질 수 있다. 장재형 목사는 "이것이 바로 목회서신을 공부해야 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라고 역설한다. 지도자든 평신도든, 디모데후서, 디모데전서, 디도서를 통해 오늘날 교회가 가져야 할 본질과 사명을 재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질을 초월하고, 혈연을 뛰어넘으며, 뒤를 돌아보지 않고 전진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계속해서 배출된다면, 교회는 새로운 부흥의 장면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디모데후서 4장 9-13절이 직접적으로 보여 주는 바와 같이, 모든 사람이 떠나도 복음의 사역은 중단되지 않는다. 겨울이 오고 감옥이 닥쳐도, 남은 자들과 새롭게 돌아올 자들이 함께 힘을 모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 바울처럼, 감옥에서도 말씀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결단이 필요하다. 성경을 깊이 묵상하고, 거기서 영적 인도를 받으며,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임하고 확장되는지를 역사 속에서 확인해야 한다. 장재형 목사가 강조하는 핵심은, 이 모든 것이 결코 이론으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반드시 교회 안에서, 지역과 민족과 열방을 향한 선교 현장에서 실행되어야 한다. 이 점이 교회가 세워질 때 가장 중요한 나침반이 된다. 그 어떤 외부 환경도, 지도자가 바울과 같은 영적 기상으로 무장해 있고, 교회가 제자도의 원리를 충실히 따르며, 성령의 이끄심에 순복한다면, 결코 교회를 무너뜨릴 수 없다. 디모데후서가 전하는 마지막 유언 같은 음성,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라는 음성을 듣는 모든 교회와 성도들은, 지금도 그 부름에 응답해야 한다. 바로 그곳에서부터 새로운 부흥과 역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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